"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 위한 것... 거부권 행사 헌법정신 반해"
"간접고용 노동자 처우 개선 기회 생길 것"
사회 원로들 "거부권 행사=반민주·반역사"
윤석열 대통령의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공포 여부 결정을 앞두고 헌법학자 등 전문가들이 해당 법은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최소한의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것이라며 시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주권자인 국민의 압도적 지지"가 있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는 2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개정 노조법의 의미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문제점'을 주제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기존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에서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한다. 하청 노동자가 실상 본인의 임금, 노동시간 등을 결정짓는 원청과 교섭할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또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고, 사측이 파업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개별 책임을 엄밀하게 따지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이 법과 큰 상관이 없고, 사내하청·용역·특고·플랫폼 등 간접고용 노동자가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현재 원하청 임금 격차를 보면 50~60%까지 차이가 나는데, 그 주요 원인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대기업 원청은 인건비 감축, 노사관계 리스크 감소를 위해 간접고용을 대폭 확대하고 막대한 이윤을 남긴 반면, 간접고용 노동자 처우는 거의 개선되지 못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기업과 노조 간 단체교섭의 가장 큰 기능은 '부의 재분배'"라며 "개정안 시행 시 하청 노동자들은 교섭력 확보로 노동조건 개선 기회가 생기고, 원청들도 점차 비정규직을 내부화(직접고용 등)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재계는 노란봉투법 시행 시 '파업이 상시화된다' '원청이 하청 노조의 교섭 요청에 무조건 응해야 하고 불응 시 형사처벌될 위험이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한다. 윤애림 노동자권리연구소 박사는 이를 "전형적 공포 마케팅"이라 일축했다. 2011년 한국수자원공사 하청 소속 청소노동자들이 공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한 경우 등 현실 사례를 보면, 원청이 교섭 요청을 외면한 채 법원 소송으로 수년간 시간을 끄는 동안 하청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기 일쑤라는 것이다.
윤 박사는 "원청은 시간과 돈이 있기 때문에 교섭 요청을 받아도 실질 사용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버틸 수 있지만, 도리어 하청 노동자는 용역업체 변경 등으로 실직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근로조건을 개선해 보려다 일자리를 잃는 하청 노동자의 현실을 비춰볼 때, 그나마 법 개정이 돼야 이들의 권리 주장 여지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헌법학자인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려면 국민의 압도적 지지가 있어야 하고, 헌법 위반 등이 매우 명확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면서 "최근 여론 동향은 국회 입법권을 무산시키는 것을 정당화할 만큼의 압도적 지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20일 성인 1,013명을 설문한 결과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 부적절 의견(63.4%)이 적절(28.6%)의 약 2배였다고 밝혔다.
노조법 2·3조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용우 변호사는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한국의 역대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이승만 45건 △박정희 5건 △노태우 7건 △노무현 6건 △이명박 1건 △박근혜 2건 △문재인 0건 등 민주주의 제도 정착에 따라 거부권 행사가 현저히 줄어드는 추세"라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양곡관리법, 간호법에 이어 집권 1년 반 만에 3번째"라고 지적했다.
한편 권영길 민주노동당 초대 대표,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명진스님, 함세웅 신부 등 종교계와 진보 인사들이 모인 '세상을 걱정하는 원로 모임'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의 노란봉투법 공포를 촉구했다. 이들은 "법 개정으로 비정규직 1,000만 시대에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헌법을 무시하고 국제규약을 위반하는 것이자 소수 재벌만을 위한 반민주·반역사적 폭거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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