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건 ‘도박’…‘미지의 세계’에 빠진 아르헨티나의 미래는?

최서은 기자 2023. 11. 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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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이 19일(현지시간) 그의 여동생 카리나 밀레이와 함께 승리를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치 아웃사이더’라고 불리는 극우 성향 하비에르 밀레이가 아르헨티나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아르헨티나의 미래가 불확실성에 빠졌다. 아르헨티나는 민주화 이후 40년 만에 가장 급격한 우경화에 직면하게 됐다.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정치 신인 밀레이 당선인이 내세우는 극단적인 정책은 전례가 없는 것들로, 사실상 아르헨티나 전체가 거대한 ‘실험실’이 됐다. 140%를 넘는 초인플레이션율과 높은 빈곤율로 20년 만에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는 아르헨티나 국민은 ‘과감한 변화’를 요구하며 밀레이를 선택했고, 이제 그는 4600만 인구의 삶을 두고 위험한 ‘도박’을 하게 됐다.

‘불확실성’에 빠진 아르헨티나…밀레이의 ‘경제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정권교체 후 급격한 사회변화를 예고한 밀레이 당선인은 당선 이튿날부터 공기업 매각 청사진을 내놓으며, 속전속결로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20일(현지시간)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간 부문의 손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국영·공영기업은 민간으로 넘길 것”이라며 “국민에게 유익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기업을 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거대 에너지 회사인 YPF를 비롯해 민영화 대상 기업 몇곳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 직후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YPF 주가는 장중 한 때 43% 이상 폭등했다.

또 ‘무정부주의 자본주의자’를 자처한 밀레이 당선인은 정부 부처를 기존 18개에서 8개로 줄이는 등 정부 역할 축소를 약속했다. 그가 없애겠다고 공언했던 부처에는 교육부·보건부·환경부 등 주요 부처들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연금, 의료, 교육, 대중교통 지원과 같은 사회보장 정책들도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밀레이 당선인이 중앙은행 폐쇄, 달러화 공식 화폐 사용, 총기·마약·신생아 매매 합법화 등 자신이 내걸어 온 과격한 공약들을 실제 어디까지 실행에 옮길 지 예측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르헨티나의 정치 평론가 마리아 오도넬은 “이것은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시나리오”라면서 “밀레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한 번도 실행된 적 없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공약들은 밀레이 당선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예를 들어 ‘달러 통화 채택’의 경우 현재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에 달러 보유고가 거의 없는데다, 달러를 대량으로 조달할 길도 없어 시도조차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밀레이 당선인은 당선 후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우리가 채택하는 통화는 아르헨티나인이 선택하는 통화가 될 것”이라며 애매하게 답변했고, 승리 후 연설에서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들이 그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민주화 40년…“과거 회귀” 우려

아르헨티나의 민주화가 다시 과거로 퇴행할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공포도 커지고 있다. 특히 3년 전 남미에서 3번째로 임신중지를 허용한 아르헨티나에서 임신중지법이 다시 폐지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임신중지법 폐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밀레이 당선인은 남녀 소득격차가 27%에 달하고, 35시간에 한 명씩 여성이 살해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젠더 폭력이 만연한 아르헨티나의 사회현실을 무시해 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여성 운동가 솔레다드 데사는 “매우 암울한 상황”이라면서 “이 정부는 우리에게 더 큰 불평등을 약속하고, 여성의 자율성·주권·독립성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라 처음부터 공언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들 역시 밀레이의 당선으로 자신들의 권리가 박탈당할까봐 크게 우려하고 있다. LGBTQ 활동가 마리아나 티소네는 “그는 과거에서 온 유령 같다”며 “밀레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아무도 모르지만, 인권 후퇴가 걱정된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의 언론인들은 밀레이 당선인이 지속적으로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 발언을 해왔다면서, 이는 지지자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40주년을 맞은 아르헨티나의 민주주의 역사도 부정되고 있다. 밀레이 당선인과 빅토리아 비야루엘 부통령 당선인은 이른바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1976~1983년 군부 독재정권 시기에 자행된 고문과 3만여명에 달하는 사망자·실종자 발생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 시기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정치분석가 에두아르도 피단사는 이날 현지 매체 페르필과 가진 인터뷰에서 “밀레이 당선인이 뛰어난 협상 능력을 발휘해 야당과 협력하고 국민들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면 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내는 정권이 될 것”이라면서 “만약 그렇지 못하면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그는 사회 폭동 발생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모든 언론 분석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니 폭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기도 했다.

시민들의 의견들도 엇갈린다. 미카엘라 산체스는 뉴욕타임스(NYT)에 “우리 모두에게 정말 암울하고 무서운 일”이라면서 “매우 슬프고 두렵다”고 전했다. 반면 다른 시민 요엘 살다니아는 “아르헨티나를 지금 그대로 두는 것이 밀레이에게 베팅을 거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진짜 변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밀레이, 대통령 당선…‘지각변동’ 시작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262320?type=journalists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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