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돼요?"... '데뷔 30년 차' 정우성의 겨울 [인터뷰]
영화 '서울의 봄'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배우 정우성은 '데뷔 30년 차'라는 말을 듣고 탄식하듯 웃었다. "저 울어도 돼요?"라며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누구보다 일을 사랑하고 현장을 즐겼던 정우성이지만 최근엔 쉼 없이 달려와 조금 지치기도 했다. "쉬고 싶어요"라는 말을 두 번이나 내뱉은 건 이번 인터뷰가 처음이다.
21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정우성과 인터뷰를 가졌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서울의 봄'은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기대를 입증하고 있다. '아수라' '태양은 없다' '비트'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의 신작이다. 극 중 정우성은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을 맡아 전두광 보안사령관 역의 황정민과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친다.
이날 정우성은 쉼 없이 달리는 원동력을 묻자 "나는 일에 감사한 거 같다. 이 일이 좋고 현장이 즐겁다. 작품이 얹어준 피로도를 다른 작품에서 해소하고 보상받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여러 작품이) 이어 붙은 거 같다"면서 "체력도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요즘은 쉬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한다"고 답했다.
배우 인생 30년을 돌아보면서 그는 "그 시간 속 작업에 있어서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고 되돌아 보면 현장에 대한 설렘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진 않았구나 싶다. 어찌 보면 큰 행운이다. 내 적성에 맞다는 것,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김성수 감독은 정우성과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만큼 이태신 캐릭터를 멋지게 그렸다. 그는 '헌트'의 이정재 감독보다 정우성을 더욱 멋지게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는 농담도 한 바 있다. 이에 정우성은 "건전한 경쟁이다. 다른 감독님들도 그 경쟁에 뛰어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크게 웃었다.
그러나 작품에서 연기를 할 때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하진 않는다고 부연했다. 정우성은 "멋짐은 제3자가 보고 평가해주는 거다. '이게 멋이야'라고 찾아간 건 아니다. 감독님이 이태신 캐릭터를 설명하며 내가 유엔난민기구 인터뷰할 때의 사진들을 많이 보냈다. 정우성이 갖고 있던 이태신과의 닮은꼴은 인터뷰할 때의 자세나 신중함이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이 신 멋지겠다' 생각해서 멋을 연기하는 순간 모든 게 다 날아가더라. 그냥 감정에 충실하면 되는 거고, 관객이 보고 평가해주는 거라 생각한다. 스타라는 걸 의식하면 스타병이란 느낌이 들듯이 멋짐도 의식하며 찍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물론 의식을 한 적도 있다. 바로 광고 촬영 현장에서다. 정우성은 "영화 촬영할 때는 의식을 하진 않았는데 광고 촬영할 때 멋짐을 의식 많이 했다. '멋진 미소'를 요구하거나 '멋있어요'라고 현장에서 난리를 치면 '이거 멋있나. 알았어' 하고 씩 웃는다. 하지만 그게 의식되는 순간 짧은 연기를 할 때도 미소가 떨리더라"고 과거의 경험을 털어놨다.
정우성에게 김성수 감독은 특별하다. 그는 "애증의 관계"라고 농담하면서도 "감독님은 내가 영화 작업을 하면서 동료로서 인정을 받고, '영화 작업이 무엇이구나' 하는 걸 현장에서 실천으로 깨우침을 준 분이다. 다른 감독님이 이걸 본다면 '김성수가 최고의 감독이라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최고의 선배이자 동료이자 아주 귀찮기도 한 사랑하는 감독이다"라고 고백했다.
'서울의 봄' 촬영 후 정우성이 얻은 것이나 느낀 바를 물었더니 "영화가 늘 인간을 다루는 직업이지 않나. 20~30대 때는 작품에 의미 부여를 하고 스스로가 갖는 의미를 크게 찾고 의식했다. 하지만 이젠 어떤 의미 부여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이태신을 하면서 더 그런 생각을 했다. 의미라는 건 주어지는 거지, 내가 강조해서도 안되고 전달할 수 없는 거다. 다수가 공감할 때 의미가 되는 거다"라고 밝혔다.
정우성은 평소 부드러운 성품으로도 유명하다. 현장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누군가를 힐난하는 법도 없다. 그는 의식적인 조절은 아니라고 설명하며 "만약 그걸 조절하고 살면 간이 다 썩어문드러질 거다. 현장은 여러 사람이 모이지 않나. 전부 나같이 생각할 순 없는 거다. 서로 경험과 경력도 다르고 충돌되면서 얘기치 않은 실수도 발현된다. 협업이란 걸 인정해야 한다.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렇기에 직업 자체가 치열한 거다. 실생활에서도 큰소리로 누군가와 싸워본 적은 없다"라고 전했다.
최근 그는 주연을 맡은 작품 외에 다양한 영화에 특별출연도 많이 했다. 정우성은 "영화제에서 카메오상 받고 싶다. 자격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외치며 "같이 작업을 했던 분들의 부탁이니까 했는데, 나도 '왜 이렇게 많이 했나' 싶더라. 이제는 그 부탁을 거절할 명분이 생겼다. 사실 카메오가 독이 될 수 있는 출연이다. 영화의 톤앤매너와 상관없는 감정을 줄 수 있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끝으로 정우성에게 2023년 한 해를 돌아본 소감을 물었다. "다음 주에 드라마가 오픈해요. 진짜 몇 년간 미친 듯이 달렸구나 싶네요. 사실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들이 같이 이뤄진 거고 감독님이 준비한 '서울의 봄'은 타이밍이 맞아서 하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지난 몇 년 너무 미친 듯 달려서 이제 차분히 좀 돌아보고 한 템포 쉬어야 하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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