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좋은데 IR 가기 무서워”… 해외 투자자 횡재세 질문에 진땀 빼는 은행
투자자들 “횡재세 도입되나” 질문 세례
민주당 법안 발의에 해외 투자자 관심 폭발
은행 “민간한 정치 질문까지 해 난감”
최근 한 국제 투자은행(IB)이 주최한 기업설명회(IR)에서 A금융지주사 임직원들은 해외 투자자들의 횡재세 질문에 진땀을 뺐다. IR 참석 이전에 이미 여러 경로로 횡재세 도입 여부와 그에 따른 실적 감소 가능성에 대한 문의가 쏟아졌다. 그런데 현장에서 직접 본 해외 투자자들의 횡재세 도입 우려는 예상보다 컸다.
문제는 A금융지주사 임직원들도 횡재세 도입 여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한 직원은 “연초에는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라 당장 횡재세가 도입될 가능성은 작다고 설명했으나 최근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등 급물살을 타면서 설명하기가 난감해졌다”고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은행을 향해 상생금융을 압박하고 횡재세 도입을 본격화하면서 3분기 실적 설명을 위해 해외 IR을 진행한 금융지주사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횡재세 도입을 당론으로 정하고 법안까지 발의하자 해외 투자자들이 관련 질의를 쏟아내고 있어서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은행업종 지수인 KRX은행 전날 종가는 641.84였다. 지난 1월 26일 737.07을 기록한 이후 계속 내리막을 걷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이 나온 지난 10월 30일에는 전날 대비 2.47% 급락한 593.61까지 빠졌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 모두 올해 좋은 실적을 기록했고 높은 배당도 기대되는 상황인데도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시장에서는 은행주의 약세가 정치권의 횡재세 도입 압박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횡재세란 특정 산업군에 과도한 이익이 발생할 때 세금으로 이를 환수하는 제도다. 법으로 적정 이익 수준을 미리 설정해 두고 이를 넘으면 세금을 더 부과하는 방식이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은행 등 금융회사가 이자수익을 많이 냈을 경우 초과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부담금을 징수하는 횡재세법을 발의했다.
금융지주사들은 3분기 실적 설명을 위한 해외 IR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횡재세 질문이 쏟아질 게 뻔해 해외 IR이 우려된다고 했다. 이미 해외 IR을 진행한 금융지주사들은 대부분 해외 투자자들이 횡재세 도입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IR을 준비하고 있는 금융지주사들도 이미 관련 부서를 통해 해외 투자자들의 횡재세 질문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상당히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질문하는 투자자도 있다”며 “올해 초에는 횡재세 도입 가능성에 부정적인 의견을 전달했으나 정치권이 움직임을 본격화하면서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다’는 답변만 했다”고 전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횡재세 도입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앞서 이탈리아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다가 은행주 폭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8월 1년 기한으로 은행의 초과이익 중 40%를 횡재세로 걷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이탈리아 은행주 지수는 7.3% 급락했고, 유로존 은행지수(SX7E)도 3.7% 하락했다. 이탈리아발(發) 유럽 경제 위기 우려까지 나오자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이 나서 철회를 권고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은행이 납부해야 할 세금의 2.5배를 준비금으로 쌓도록 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횡재세가 도입되면 국내 은행주에 투자한 외국계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60~70% 수준이다. 여기에 은행들의 실적도 악화돼 주가 하락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횡재세 법의 원안 시행을 가정할 경우, 금융지주사내 은행계열사들이 부담하는 횡재세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1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그룹 세전이익의 약 6.3% 규모다”라고 분석했다.
한 금융사 임원은 “현재 여당은 반대하고 있지만 횡재세 도입을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높다는 점도 부담이다”라며 “해외 투자자들도 이런 문제를 이미 파악하고 있고 횡재세 도입에 따른 손실 규모까지 물어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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