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하고 스스로 ‘여성’ 칭했던 로마 황제… 英 박물관, ‘그녀’로 표기한다
여장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진 로마의 23대 황제 엘라가발루스를 영국의 한 박물관이 ‘그녀’(she)로 표기하기로 했다.
20일(현지 시각)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영국 히친의 노스 하트퍼드셔 박물관은 로마 23대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대명사로 ‘그녀’를 사용하고, 그를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엘라가발루스는 서기 218년부터 222년 친위대에 의해 암살당하기 전까지 짧은 기간 집권했다. 그는 집권 기간 남성과 여성 모습을 모두 가진 양성구유(兩性具有)의 신을 자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 시대 기록자 카시우스 디오가 남긴 글에 따르면, 엘라가발루스는 당시 ‘부인’ ‘여성’ 여왕’ 등으로 불렸으며, 자신의 애인에게 “나를 군주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장도 자주 했다. 대영박물관에 따르면, 엘라가발루스는 의사들에 성전환 수술을 요구하며 성공할 시 막대한 보상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금색이나 보라색 등 화려한 색의 옷을 선호했으며, 때로는 여성용 왕관을 착용하기도 했다고 대영박물관은 설명했다.
이에 따라 노스 하트퍼드셔 박물관은 전시 설명에 사용되는 인칭 대명사는 당사자가 직접 사용했거나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쓰여야 한다는 박물관 규정에 따라 엘라가발루스를 ‘그녀’로 지칭하기로 했다. 이 박물관을 운영하는 노스 하트퍼드셔 의회의 키스 호스킨스 의원은 “엘라가발루스는 확실하게 ‘그녀’라는 대명사를 선호했다”며 “우리는 과거의 인물에게도 현대의 인물에게 하듯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에 민감해지려고 한다”고 했다. 현재 노스 하트퍼드셔 박물관은 엘라가발루스 집권 당시 제작된 은화를 전시품으로 소장하고 있다.
다만 엘라가발루스의 성적 취향은 그를 암살하고 집권한 세베루스 알렉산더 황제 세력에 의해 악의적으로 부풀려 기록됐다는 주장도 있다. 앤드루 월러스-하드릴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로마인들에게 ‘트랜스젠더’라는 범주에 대한 인식은 없었지만, 여성으로서 성행위를 한다고 남성을 비판하는 것은 그에 대한 최악의 모욕이었다”며 “게다가 엘라가발루스는 로마가 아닌 시리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인종적 편견이 기반이 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맨체스터 대학의 고전학자 크리스티안 라에스 교수도 “황제의 삶에 대한 고대 기록은 어느 정도 의구심을 갖고 받아들여야 한다”며 “문제와 위기의 시대에는 소위 ‘성적 규범을 위반한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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