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과 이상희의 꼭 잡은 손, 워킹맘들 울린 까닭('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엔터미디어=정덕현]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애를 쓰며 살게 된 걸까. 워킹맘 권주영(김여진)은 어느 날 딸이 학교에서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에 빠진다. 회사 일 챙기랴 정신없는 와중에도 딸을 챙겨왔지만, 늘 딸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그였다. 혹여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을까 딸과 함께 정신병동을 찾았는데, 의사가 의외의 말을 꺼낸다. "어머님도 진료 한번 받아 보시면 좋을 거 같은데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5화에 들어 있는 워킹맘 에피소드는 그렇게 아이의 문제로부터 시작해 그 엄마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의사의 제안에 너무나 황당해했지만, 이 워킹맘 권주영은 자신이 심각한 상태라는 걸 금세 깨닫게 된다. 우연히 마트 앞에서 만나게 된 학부모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 학부모의 딸이 자신의 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까무룩 잊어버렸던 거였다. 그는 병원에서 우울증에 의한 '가성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
만성적인 우울감이 있었지만, 그저 바빠서 그러려니 해왔던 그였다. 하루종일 울려대는 핸드폰으로 업무 처리를 하고, 그러면서 입시 준비를 하는 딸을 챙기는 그는 쉴 틈이 없다. 아니 생각할 틈도 없다. 그래서 뭘 해도 죄인 같다. 회사 일에서도 또 딸에게도. 우울감은 거기서 비롯된 것일 테다. 어쩌면 이건 우리 사회에서 일하면서 가족을 챙기는 모든 워킹맘들이 갖고 있는 감정이 아닐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매 에피소드별로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이 워킹맘 에피소드에서도 그를 전담하는 간호사 박수연(이상희)의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더해진다. 역시 워킹맘인 박수연은 환자들을 챙기느라 늘 퇴근이 늦는다. 맞벌이라 갑자기 야근을 해야할 때면 이웃에게 사정해 아이를 잠시 맡아달라 부탁하고 퇴근 후 아이를 챙겨오기 일쑤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
아이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엄마에게 묻고, 엄마가 병원에 아픈 사람이 많아서 그랬다고 하자 아이가 하는 말이 이 워킹맘의 가슴을 비수처럼 찌른다. "나도 아픈데... 엄마 나도 아픈데, 엄마는 간호산데 왜 나는 간호안 해줘?" 박수연은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괜스레 잘 때까지 옆에 있어주겠다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아이를 재우고도 해야할 일은 넘쳐난다. 어지러진 집을 치워야하고 빨래도 챙겨야 하고... 워킹맘들의 우울감은 쉴 틈 없이 일하며 살고 있지만 늘 죄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온다.
권주영은 의사로부터 '자서전 처방'을 받는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건들을 기록하되 그때 느꼈던 감정을 중심으로 쓰라는 처방이었다. 의사는 그렇게 써온 자서전을 다시 읽으며 거기 부정적인 감정표현들을 노란 형광펜으로 그어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별로 없던 노란줄이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걸 권주영은 발견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애를 쓰게' 만드는 일인가를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자서전 가득 채워진 노란줄은 그래서 이 땅의 워킹맘들이 굳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마음 속 상처들을 형광색으로 꺼내주었다.
아이의 학업 문제를 고민하는 박수연 간호사는, 환자지만 그런 일을 잘 아는 권주영에게 과외 코디네이터 선생님을 소개받을 수 없냐고 묻는다. 간호사가 환자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는 건 그가 얼마나 워킹맘으로서 애를 쓰고 있고 절박한가를 말해준다. 권주영은 흔쾌히 도와주겠다며 박수연 간호사에게 말한다. "단톡방 엄마들한테 있는 아양, 없는 아양 다 떨어가며 초대받은 적 있어요. 그때 꼭 면죄부 받은 느낌이더라." 그 말에는 엄마들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힘든 워킹맘들이 늘 갖게 되는 죄책감이 느껴진다.
그러자 박수연 간호사가 자신이 딱 그렇다며 "엄마 노릇을 못하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누가 환자이고 누가 간호사인지 그 경계가 사라진 대화가 아닐 수 없다. 워킹맘 때문이라는 소리 듣기 싫어서 더 잘하고 싶은데 그게 너무 힘들다며 말하는 박수연 간호사의 목소리에서는 물기가 느껴진다. 울먹임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순간 권주영은 박수연 간호사의 모습에서 자신의 젊은 날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젊은 날의 자신에게 울먹이며 이렇게 말한다.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거야. 모든 걸 다 해주고도 못해준 것만 생각나서 미안해질 거고 다 니 탓 할거고 죄책감 들거야. 니가 다 시들어가는 것도 모를 거야. 인생이 전부 노란색일 거야. 노란불이 그렇게 깜박이는데도 너 모를 거야. 아이 행복 때문에 니 행복에는 눈 감고 살거야. 근데 니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 그건 이제 늦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회한이 깃든 말이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이 환자는 깜박 정신을 차리고는 간호사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박수연 간호사를 자신으로 착각해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권주영의 손을 박수연 간호사는 따뜻하게 쥐어주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에 "아니예요. 괜찮아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짓는 박수연 간호사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는 권주영에게 "애 많이 쓰셨다 그죠?"라고 말해줬는데, 그건 또한 박수연 간호사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아마도 이 땅의 모든 워킹맘들이라면 그 한 마디에 먹먹해지지 않았을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그리는 세계는 이처럼 그저 바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소통을 담고 있다. 간호사건 환자건 그 세계가 주는 힘겨움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꼭 쥔 손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켜쥔다. 이 감동적인 드라마에 노랑 형광펜을 그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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