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중앙銀 폐쇄, 페소 폐지” 아르헨 대통령 당선자, 달러 도입 추진

정미하 기자 2023. 11. 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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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자유주의 성향 말레이 당선
“현정부, 4년 동안 페소 찍어내 통화 가치 하락
에콰도르, 2000년 달러화 도입 후 인플레 통제
달러화 도입 자금 부족·법원 반대 걸림돌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극단적 자유주의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53) 하원의원이 19일(현지 시각) 승리하면서 아르헨티나 통화가 페소에서 달러로 바뀔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밀레이 당선자는 달러화를 도입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법원이 반대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이견이 존재하고 있어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다 달러화 도입으로 인플레이션 잡기에 성공했던 에콰도르보다 경제 규모가 크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정치적 아웃사이더이자 극우 경제학자 출신인 밀레이 당선자는 당선 후 미국 달러를 도입할지 여부에 대해 “중앙은행을 폐쇄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라며 유세 기간 ‘페소는 쓰레기’라고 말했던 바를 강조했다. 밀레이는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선 중앙은행을 폐쇄하면 통화는 아르헨티나인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이퍼인플레이션 그림자가 우리를 항상 따라다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앙은행이 정부의 과잉 지출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찍어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아르헨티나가 통화량을 줄이면 18~24개월 안에 인플레이션을 파괴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비공식 환율(1달러당 약 950페소)로 계산했을 때 100달러(아래·이날 기준 12만9000원 상당)로 바꿀 수 있는 아르헨티나 1000 페소 화폐 뭉치. / 연합뉴스

밀레이 당선인은 대선 기간 “페소는 아르헨티나 정치인들이 만든 쓰레기”라며 자신이 당선된다면 중앙은행 폐쇄, 페소화 폐지, 미국 달러화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동안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 정부는 공공 부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앙은행을 통해 2019년부터 4년 동안 돈을 마구 찍었고, 페소화 가치는 90% 넘게 폭락했다. 여기다 연간 물가 상승률은 지난 3월 100%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달 143%까지 올랐다. 이에 달러화 도입으로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저지하겠다는 게 밀레이의 구상이다.

말레이 당선인의 구상에 따르면 달러는 페소와 달리 정부가 예산 격차를 메우기 위해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기에 인플레이션을 막고 환율 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달러는 통화 정책을 미국에 맡기겠다는 것이라 국가 자율성 상실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WSJ는 “아르헨티나에 자국 통화가 없다면 외부 충격을 완화할 통화 수단이 부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달러화는 미국 외에 총 7개의 주권 국가에서 법정 통화로 쓰인다.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파나마 등이 대표적이다. 에콰도르는 달러화 도입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성공한 경우로 꼽힌다. 에콰도르는 2000년 1월, 자국 통화인 수크레를 폐기하고 달러를 법정 통화로 채택했다. 중앙은행이 자체적으로 화폐를 찍어내지 못하도록 해 달러화 수입량을 기준으로 통화량을 맞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였다.

에콰도르는 달러화 채택 이후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00년 에콰도르의 인플레이션은 96.1%에 달했으나, 2001년 37.7%로 떨어졌다. 2002년에는 12.5%로 또 내려앉았고, 2003년 7.9%, 2004년 2.7%, 2005년 2.2%, 2006년 3.3%로 안정적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경제는 에콰도르의 수 배에 달한다. CNN은 “아르헨티나 규모의 경제국이 미국에 통화정책 결정권을 넘긴 적은 없다”며 “만약 밀레이가 페소를 포기하고 달러를 법정 통화로 사용한다면 아르헨티나를 미지의 영역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콰도르가 달러를 채택하기 전인 1990년대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아우구스토 드 라토레는 “달러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며 “구조개혁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이 19일(현지 시각) 당선이 확정된 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실제로 밀레이 당선인의 주장대로 법정 통화를 달러로 바꾸는 것은 험난할 전망이다. 우선 아르헨티나가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라 이를 실행할 자금이 부족하다. 시장에선 달러화로 전환을 위해 400억~600억달러에 달하는 달러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서반구 담당 국장을 지낸 알레한드로 베르너 경제학자는 WSJ에 “우선 전체 본원통화를 달러로 전환하려면 자본 시장에 접근해야 하는데 아르헨티나는 그럴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 내부의 정치적 문제도 달러화 전환에 있어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어떤 정당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분열된 상태다. 말레이가 이끄는 ‘자유의 전진’은 하원 257석 중 37석, 상원 72석 중 7석을 차지했으나, 원내 제3당에 불과하다.

이를 반영하듯 밀레이 당선인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준 중도 우파 연합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달러화 도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무소속과 온건파 의원들이 달러화에 어떤 입장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다 법원은 이미 달러화 도입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호라시오 로사티 대법원 판사는 지난 9월 스페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페소를 외화로 대체하는 것은 위헌이며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현실적으로 달러화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골드만삭스는 20일 보고서에서 “경제학에서 모든 것이 그렇듯 공짜 점심은 없다”며 “달러화를 채택하고 혜택을 누리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밀레이 당선인은 결선투표에서 개표율 99% 기준, 56%의 득표하며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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