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전쟁터"…그 속에서 우뚝 선 김나래 파티시에
사과 타르트 하나에 5일…"재료 본연의 맛 최대한 끌어내려 해"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생긴 건 투박했다. 위에 톡 하니 튀어나온 꼭지가 아니었다면 이 디저트 접시에 담긴 게 사과일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거다.
포크로 한 입 떼어 입에 넣자 사르르 녹는 '천국의 맛'이다. 사과의 풍미는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과하지 않은 달콤함이 스며 나왔다.
부모나 친구에게 꼭 맛보이고 싶은 사과 타르트, 이달 6일 프랑스 레스토랑 가이드 '고 에 미요(Gault & Millau)'가 올해의 파티시에로 선정한 김나래(34)씨의 작품이다.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에서 수석 파티시에로 일하는 김씨를 20일(현지시간) 찾아가 만났다.
일하던 중에 짬을 낸 터라 흰색 셰프 복 차림 그대로 마주 앉았다.
김씨는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서 큰 영광"이라고 했다.
1972년 만들어진 '고 에 미요'는 미쉐린 가이드와 함께 권위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북으로 꼽힌다. 매년 요리, 제과, 소믈리에, 홀 매니저 부문으로 나눠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제과 부문에서 외국인 여성을 선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인으로도 최초다.
김씨는 "제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이 있고, 또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세져서 운이 따라준 것 같다"고 자신을 낮췄다.
그러나 실력이 없으면 눈앞의 운도 놓치기 부지기수 아니던가.
충남 당진 출신인 김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외길을 걸으며 내공을 한 켜 두 켜 쌓아왔다.
특별한 날에만 먹던 케이크에 '로망'을 품고 있던 그는 당진에 제과제빵 학원이 생기자 곧장 등록을 마치고 이내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김씨의 관심은 잡지에 나오는 화려한 초콜릿 공예나 설탕 공예 같은 기술에 쏠린다. 당진에서 배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은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할 때 버스를 타고 상경해 3시간짜리 학원 수업을 듣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에 세 번씩, 그렇게 고3 시기를 보냈다.
그의 실력은 대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눈에 띈다.
충남 기능 경기대회 금상, 전국기능경기대회 은메달, 주니어 페이스트리 월드컵 종합 2위 등 차곡차곡 경력을 쌓았다.
하얏트 호텔과의 인연은 졸업 후에 처음 닿았다.
대학과 하얏트 호텔이 맺은 인턴십 프로그램 참가자로 뽑혀 2011년 여름부터 1년간 괌 하얏트 호텔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후 3년간은 서울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일했는데, 한국에서의 첫 직장생활이 녹록지는 않았다.
김씨는 "휴가를 신청하지 못했다. 조직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이해를 못 했다"며 "사회 초년생이어서 힘들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고민하던 김씨에게 괌 호텔의 총지배인은 베트남에서 일해보길 추천했고, 이후 또 다른 지인의 연결로 2018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와 미쉐린 3스타 셰프 야닉 알레노 밑에서 혹독하게 배운다.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에서는 2021년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장 프랑수아 루케트 총주방장이 업계에서 힘들기로 소문난 알레노 셰프를 '버텨낸' 김씨의 끈기와 재능을 높이 평가해 스카우트했다. 김씨는 "저는 인복이 참 많다"고 말했다.
김씨가 꿈에 그리던 프랑스행이었지만 처음 3년은 너무 힘들었다. 언어 장벽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코로나19가 터져 아시아인으로서 인종차별도 겪었다.
업무적으로도 그는 "프랑스는 하루 7시간만 일하는 줄 알았는데, 일을 진짜 많이 해서 깜짝 놀랐다"며 "초반 14시간은 기본이고, 18시간, 19시간까지 일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디저트도 하나의 예술이니 오랜 공을 들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기자에게 내민 사과 타르트의 경우 5일의 시간을 쏟았다고 한다. 설탕 등 첨가제를 넣지 않고 "테크닉과 시간을 들여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려 한다"는 게 김씨의 소신이다.
김씨는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딸기나 수박, 참외를 따오라고 하시면 그렇게 시골 사람인 게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본연의 맛을 알았던 게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디저트의 나라, 미식의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작'의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그는 "파리는 전쟁터"라며 "매 시즌 남들과 다른 내 스타일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야 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고객들이 주는 모든 피드백도 감사히 여긴다고 한다.
현재의 고민은 뭘까.
김씨는 "하루하루 균일한 퀄리티를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1등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를 지키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김씨 역시 잘 알고 있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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