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시장도 기울어진 운동장… 큰손 고래, 업비트 코인 90% 보유
다수 코인, 대형 투자자 비중 커
위믹스처럼 시세 폭락 위험 우려
국내 원화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에서 거래 지원하는 가상자산 10개 중 9개는 고래(대형 투자자)의 보유 가상자산이 소액 투자자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된 가상자산이 발행사업자나 일부 중개 사업자 등에게 쏠린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고래 쪽으로 기울어진 코인 운동장에선 건전한 시세 형성이 어렵고 대량 매도 후 뒤따르는 시세 폭락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21일 조선비즈가 업비트에 상장된 전체 가상자산의 코인마켓캡(가상자산 시황 중계 사이트)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체 116종 중 고래와 소액 투자자의 코인 보유비율이 공시된 가상자산은 총 42종이다. 고래는 가상자산업계에서 대형 투자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고래의 투자 지표는 기관 투자자의 투자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코인마켓캡은 고래 투자자를 특정 가상자산의 전체 유통량 중 1%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로 규정한다.
지난 19일 기준, 고래·소액 투자자 정보가 공개된 42종 가상자산 데이터에 따르면 고래의 코인 보유량이 50%를 웃도는 코인은 36종(85.7%)에 달한다. 36종의 코인은 소액 투자자들이 가진 모든 코인을 합해도 고래의 보유량보다 적은 것이다. 폴리곤과 칠리즈 등 유명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 중 일부도 해당 부류에 속한다. 42종 코인의 고래 보유 비율 평균을 계산하면 70.3%, 소액 투자자 보유 비율 평균은 29.7%로 집계된다.
고래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가상자산은 엘프로 전체 유통량의 95.37%를 고래들이 가지고 있다. 고래 보유 비율이 가장 낮은 가상자산은 비트코인으로 1.31%에 불과했다. 이외에 이더리움의 고래 보유량은 26.74%, 도지코인은 45.26% 등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고래의 영향력이 클수록 소수 세력에 의한 대량매도 및 시세폭락의 위험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고래는 단순 큰손이 아니라 발행사업자 혹은 발행사업자와 연관된 작전세력이라는 게 업계와 학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그렇기에 고래의 거래는 발행사업자의 손익과 밀접히 연계돼 건전한 시세 형성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자선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고래는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업자나 자전거래 업자일 확률이 높다”며 “고래들은 코인 매수로 가격 호재를 만들고 발행사업자는 유통량을 늘린 뒤 이들이 가지고 있던 코인을 현금화해 이익을 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인 유통량이 늘면 이후 전반적인 코인 가치가 떨어지는데 고래들의 물량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쏟아지니 뒤늦게 들어간 개인 투자자는 손해를 보는 구조다”고 덧붙였다.
홍푸른 법률사무소 디센트 대표변호사는 “소수 고래의 선택에 의해 시세가 좌우된다”며 “고래가 시장에 코인을 매도할 때 개인 투자자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물량이 공급돼 속수무책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위믹스 폭락 사태는 고래의 수(手)에 소액 투자자 등이 터진 대표적 사례다. 위믹스를 만든 위메이드는 지난 2021년 말쯤 위믹스를 사전공시 없이 대량매도해 2000억원가량을 벌었다. 당시 위믹스 가격은 70%가량 폭락했다. 이후 위믹스 투자자들은 위메이드가 위믹스 유통량을 속였다고 주장하며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고 현재 서울남부지검은 장 대표의 위법 혐의가 있는지 수사하고 있다.
가상자산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점도 소액 투자자의 투자 안정성을 낮추는 요소다. 증권도 소수 인원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증권은 공시 제도 및 내부자 거래 금지 등의 규제를 통해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반면 가상자산은 관련 규제가 없는 노릇이다.
홍 변호사는 “코인은 법령상 해석의 다툼이 있지만 현재 자본시장법·상법 규제를 받지 않는다”며 “투자자 보호에 대한 조치가 극히 미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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