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좀 벌자 vs 공익 우선… AI 산업계 ‘철학적 균열’
“인공지능(AI)은 핵무기와도 같다.”
지난 5월 ‘딥러닝(심층 학습)’의 아버지라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구글을 떠났다. “AI는 인간보다 똑똑해질 것이며, 누군가 이 위험성을 고발(blow the whistle)해야 한다”고도 했다. AI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서비스 개발에 나선 기업과, AI의 파괴성을 경계하며 개발을 늦춰야 한다는 학자의 첫 ‘결별’이었다. 반년이 지난 17일(현지 시각) AI를 둘러싼 급진파와 온건파의 갈등은 글로벌 AI 산업을 이끌어온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 해고 파문으로 이어졌다. 반란의 중심에 선 사람은 오픈AI 공동 창업자이자 힌턴의 수제자인 일리야 수츠케버 오픈AI 수석 과학자였다. AI를 경계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한 그는 올트먼의 급격한 AI 사업화 행보를 거대한 위협으로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AI를 구축하는 사람들 사이의 철학적 균열’이 가장 잘 드러난 사건”이라고 했다. AI를 ‘가장 큰 비즈니스 기회’라 믿는 올트먼 같은 급진파와 ‘너무 빨리 움직이면 위험하다고 걱정하는’ 수츠케버 같은 온건파의 갈등이 오픈AI의 폭발적 성장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19일(현지 시각)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을 종합하면, 오픈AI 이사회의 올트먼의 복귀 협상도 이런 철학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세쿼이아캐피털 등 주요 투자자가 이사회에 올트먼의 복귀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협상이 시작됐지만, 이사회는 ‘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걸겠다’는 투자자들의 위협에도 올트먼이 내건 조건을 거부하고 그의 해임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사회는 임시 CEO로 에밋 시어 트위치 전 CEO를 고용하기로 결정하며 올트먼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올트먼은 자신의 사업 방식을 더욱 잘 이해해줄 이사진 후보로 브렛 테일러 전 세일즈포스 CEO ,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CEO, 셰릴 샌드버그 전 메타 COO 등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AI의 사업화에 긍정적인 올트먼의 ‘아군’이다. 협상 테이블에 참석한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MS의 이사회 참관인 자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오픈AI 이사회는 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에선 “AI의 안전한 개발을 위해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독립적 판단을 내리기로 처음부터 약속한 오픈AI 이사회가 갖은 비판과 역풍에도 그 철학을 이어가기로 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WSJ는 “오픈AI 이사회는 이윤보다 사회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임무를 맡은 매우 특별한 이사회”라고 했다. 2015년 비영리 단체로 시작한 오픈AI는 “(안전한 AI 구축에 대한) 공공 부문의 명확한 움직임이 없는 상황에서 공익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구성된 민간 프로젝트 추진 필요성”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AI가 언젠가 스페이스X의 로켓, 크루즈와 구글의 자율주행차처럼 현실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고 그 안전장치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완벽한 시장 논리로 사업을 키우고 있는 올트먼의 행보는 이런 창립 이념을 배반한 행위로, 오픈AI 이사회로서는 퇴출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반면 올트먼을 지지하는 AI 개발자들은 오픈AI 이사회가 지나친 이상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AI 개발을 하면서 돈과 깨끗하게 선을 긋겠다는 발상 자체가 허상이라는 것이다. AI를 개발할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챗GPT를 출시한 영리 법인 ‘오픈AI 글로벌’을 설립한 것부터 이미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MS의 거액 투자를 받은 뒤 오픈AI는 탄력을 받아 GPT-3 출시 1년 만에 두 번 크게 업그레이드한 ‘GPT-4 터보’를 내놓을 정도로 빠른 발전을 이어갔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올트먼을 내쫓는다고 AI 개발이 중단되진 않을 것”이라며 “AI를 둘러싼 막연했던 갈등이 점차 구체적인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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