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좀 뽑아가”…‘꾼들’의 ‘망했다’, 4년 만에 처음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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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농사짓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S리엔 프로 중의 프로 농부들이 포진해 있어 매해 대풍작을 거두는 것만 봐왔다.
그런데 올해 4년 만에 처음으로 농사 망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500평쯤 되는 무밭에 내 종아리만큼 굵고 실한 무가 그득하다.
차 트렁크에 실리는 만큼 가득 싣기는 했는데, 이번에도 무 셔틀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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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농사짓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S리엔 프로 중의 프로 농부들이 포진해 있어 매해 대풍작을 거두는 것만 봐왔다. 그런데 올해 4년 만에 처음으로 농사 망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리 옆 2천 평 밭에선 감자가 1t 포대로 4개 나왔다고 한다. 20포대는 거뜬히 거두던 밭인데 올해 비가 많이 오고 더워서 거반 썩었단다. 공룡 소리로 지켰던 배추밭도 결국은 무름병이 들어 갈아엎었다.
병들고 썩어 망하기도 하지만 잘돼서 망하기도 한다. 2주 전 아랫집 어르신이 고추밭 고랑 사이사이 심어둔 감자를 캐고 계시기에 가서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한 뼘씩 되는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어 “아유, 고추가 엄청 잘됐네요. 이건 익혀서 따시려고요?” 여쭈니, 고추가 늦더위로 늦게 많이 열렸는데 지금은 값도 별로 없고 상태도 썩 좋지 않아 팔 수가 없단다. “그럼 이걸 다 어쩌시려고요?” 물으니 “갈아버려야지 별수 있나” 하신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워서 우리가 조금 따가도 되겠냐고 하니 양껏 따가라 하신다. 처음엔 조금만 따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챙겨간 비닐봉지가 크기도 했고, 따다보니 욕심나서 계속 땄다. “아, 이제 그만. 그만 따자” 하고 허리를 펴고 일어나면 남편이 계속 따고 있다. “아, 그만 따” 하면 “이것만 따고” 해서 기다리다, 싱싱한 고추 다발이 보여 또 쪼그리고 따다보면 남편이 와서 “아, 그만 딴다매~” “요것만 따고” 그렇게 반복하길 여러 번. 결국 한 자루를 채워버렸다.
어르신이 “아이고 잘했네, 우리는 가져가서 먹어주면 고맙지. 저짝에 청양고추도 따가유” 하신다. 양껏 따긴 했는데, 우리는 이걸 다 먹을 능력이 안 된다. 시어머니께 전화하니 반가워하시며 “다 가지고 와라~” 하셔서 주말 오후 막히는 길을 뚫고 시가에 가져다드렸다.
지난주엔 막국숫집에 갔더니 사장님이 “무 좀 뽑아가” 하셔서 같이 사장님네 무밭에 갔다. 500평쯤 되는 무밭에 내 종아리만큼 굵고 실한 무가 그득하다. “올해 뭇값이 없어서 인건비도 안 나와. 이번주 지나면 갈아야 돼. 가져갈 수 있으면 많이 가져가.” 싱싱한 무청을 붙잡고 살짝 힘을 주니 투둑 하고 무가 쑥 뽑힌다. 재미가 들려 뽑다보니 꽤 뽑았다. 차 트렁크에 실리는 만큼 가득 싣기는 했는데, 이번에도 무 셔틀을 하게 됐다. 토요일 밤, 네 시간 걸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시가에 절반 내려주고, 강남구에서 횟집을 하는 지인에게 나머지 반, 생무 좋아하는 우리 아부지한테 여남은 개 드리고 돌아오니 진이 다 빠졌다. 거저 주워다 먹는 것도 보통 품이 드는 일이 아니다.
우리 몫으로 챙겨온 무 세 개 중 하나를 조금 잘라 생으로 먹어봤다. 아작아작하니 달고 시원하다. 아, 이 아까운 걸… 탄식이 또 나온다.
한편 우리 배추도 수확했다. 배추농사를 해보니 모든 일엔 때가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병은 안 났지만 생육기간이 90~100일은 돼야 하는데 늦게 심어 75일밖에 못 키웠다. 배추가 오므라들지를 않아 2주 전에 한 가닥 한 가닥 모아 머리를 묶어줬는데도 속이 차다 말았다. 무는 내 주먹만큼 큰 게 제일 잘됐고, 깍두기 담그면 딱 두 조각 나오게 생긴 방울무가 대부분이다.
농사는 역시 어렵다. 초보에게도 프로에게도.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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