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병뚜껑
2023. 11. 20. 23: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사방에 병(病)이 있다 알록달록한 뚜껑들.
사방이 다 병(病)이다.
시 속 '언니'는 지금 막 하나의 병을 얻었고, 언니와 '나'는 한껏 당혹스러운 상태로 갓 딴 병을 주시하고 있다.
"운명은 병 하나 앞에 놓고 입과 눈을 멋대로 놀리는 것!" 시인은 탄식한다.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천수호
사방에 병(病)이 있다 알록달록한 뚜껑들. 파랑뚜껑 빨강뚜껑 주황뚜껑 어느 병이 잡히나? 나무젓가락을 퉁겨 맥주병을 따던 여릿한 손목의 그녀처럼 통쾌하게, 내장이 줄줄 흐르는 꽃게 등딱지 따듯 조심스럽게, 병의 맛은 풍부하고 목이 탄다 꽉 찬 듯 모자란 용량의 말이 출렁이는 병들
언니가 갓 딴 병 앞에 앉아 있다 탄산 안개에 휘감긴 병, 언니는 병 주둥이가 안 보여 웃고 나는 병의 눈알이 안 보여 운다 운명은 병 하나 앞에 놓고 입과 눈을 멋대로 놀리는 것! 귀가 얇아진 이쪽 끝에서 코가 무뎌진 저쪽 끝, 숱한 병들이 손목 앞에서 깝죽거린다
언니가 갓 딴 병 앞에 앉아 있다 탄산 안개에 휘감긴 병, 언니는 병 주둥이가 안 보여 웃고 나는 병의 눈알이 안 보여 운다 운명은 병 하나 앞에 놓고 입과 눈을 멋대로 놀리는 것! 귀가 얇아진 이쪽 끝에서 코가 무뎌진 저쪽 끝, 숱한 병들이 손목 앞에서 깝죽거린다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사방이 다 병(病)이다. 오랜만의 안부 가운데 새로운 병명을 알게 되거나 새로운 병원의 위치를 익히게 되는 일이 잦다. 그리고 어제는 두 통의 부고를 받았다. 병은 어째서 이토록 무자비한지. 그것이 병(甁)이라면 그 병을 훔쳐다 속에 든 것을 콸콸 다 쏟아버리고 싶다. 병을 던지고 싶다. 부수고 싶다. 손목 앞에서 자꾸만 깝죽거리는 숱한 병들.
시 속 ‘언니’는 지금 막 하나의 병을 얻었고, 언니와 ‘나’는 한껏 당혹스러운 상태로 갓 딴 병을 주시하고 있다. 낯선 시간을 앓고 있다. 병은 주둥이도 눈알도 모조리 감춘 채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과연 표독하고 무자비한 병. “운명은 병 하나 앞에 놓고 입과 눈을 멋대로 놀리는 것!” 시인은 탄식한다. 병은 기어코 운명을, 삶 전체를 원망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더 아픈 것이다.
박소란 시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계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임신했는데 맞았다 하면 돼” 아내 목소리 반전… 전직 보디빌더의 최후 [사건수첩]
- “정관수술 했는데 콘돔 갖고 다닌 아내”…아파트·양육권 줘야 할까?
- “저 여자 내 아내 같아”…음란물 보다가 영상분석가 찾아온 남성들
- “보면 몰라? 등 밀어주잖아” 사촌누나와 목욕하던 남편…알고보니
- 세탁기 5만원?…직원 실수에 주문 폭주, 56억 손해 본 회사는? [뉴스+]
- 알바 면접 갔다 성폭행당한 재수생…성병 결과 나온 날 숨져 [사건 속으로]
- 아내 몰래 유흥업소 다니던 남편…결국 아내와 태어난 아기까지 성병 걸려
- 무궁화호 객실에서 들리는 신음소리…‘스피커 모드’로 야동 시청한 승객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