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성 "배우 아내와 어머니 암 투병... 몰래 많이 울었죠" [인터뷰]
배우 김영성은 '빅슬립'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고 많은 무대에 섰던 그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아왔다. 찰나의 순간에 등장하는 역할도 그에겐 무척이나 소중했다. 하지만 들끓는 에너지를 분출하고 싶었고, 비중 있는 역할에 대한 갈망이 커져가던 중 운명처럼 '빅슬립'을 만나게 됐다.
'빅슬립'은 작은 영화가 가진 큰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주목받았고, 오는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태훈 감독이 연출한 '빅슬립'은 서울 외곽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30대 남자 기영(김영성)과 갈 곳 없는 10대 소년 길호(최준우)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린 영화다.
이 작품은 지난 6일 VIP 시사회를 개최했다. 손석구 고규필 김준한 고경표 김고은 배유람 엄태구 김성균 염혜란 이동휘 음문석 등 수많은 스타들이 참석해 주연배우 김영성을 응원했다. 여기엔 김영성의 아내인 배우 도윤주의 공이 컸다. 아내는 본업이 배우임에도 남편의 일에 두 팔을 걷어붙이는 열혈 지원군이기도 하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영성은 개봉을 앞두고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동행한 아내 도윤주는 짧은 머리카락을 모자로 감추고 있었지만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서로를 누구보다 아끼는 이들 부부의 반짝이는 눈빛이 영화를 더욱 응원하게 만들었다.
이날 김영성은 "결혼은 20년도에 '빅슬립' 찍기 전에 했다. '빅슬립' 때도 아내가 다음 날 촬영이면 신 정리를 해서 같이 맞춰주기도 하고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그랬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오디션이 있거나 할 땐 애기를 재우고 나오면 거실 의자에 (아내가) 앉아서 '해봐' 한다. 하하. 연기 연습도 하고 대사도 외우고. 같이 배우로서 성장해가면 좋을 거 같다"고 밝혔다.
사실 이들은 힘든 시기도 겪었다. 김영성은 "같이 살면서 형편이 안 좋아서 돈이 없었다. 그래도 조금씩 일이 있었고, 둘이 통장 하나를 만들어서 돈이 모이는 느낌이 들 때 굉장히 기분이 좋더라. 혼자였으면 좀 벅찼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내가 몸이 안 좋다 보니까 가정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 제쳐두고 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마인드 컨트롤도 하고 그렇게 지냈다"고 털어놨다.
김영성은 아내와 어머니가 동시에 암 투병을 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야기를 꺼내기도 조심스러웠지만 그는 "이젠 초월해버렸다. 살아나가야 하고 아이들은 나를 보고 웃고 있지 않나"라며 오히려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가족 한 명이 아프면 전체가 힘들죠. 부산에서 상 받고 나서 직후에 윤주가 아픈 걸 알게 됐어요. 부산에서도 계속 피곤하다고 하고 이상하게 어머니도 피곤해하셨어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병원에 갔는데 윤주가 울면서 나오더라고요. 뭔가 큰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죠. 어머니도 같은 시기에 암 투병을 하셨어요. 이제 저는 흥분 상태로 (배우로서) 달리려고 하는 기운이 있었는데 운명의 타이밍이 참 쉽지 않더라고요. 엄마가 위로하려고 '너 진짜 좋은 일 오려나 보다' 하셨어요."
배우로 주목받고 새 작품 출연의 기회도 찾아왔지만 가장인 김영성은 가족을 챙기기 위해 포기해야 했다. "원래 윤주는 저에게 '작품을 너무 가리지 말고 뭐든 해라. 너 그렇게 대단한 배우 아니야. 움직여야 해'라고 얘길하는데 그 당시에 대본을 받고 '할까?' 물어봤는데 '나 무서워' 하더라고요. 항암을 시작하면서 윤주도 많이 무서웠던 거 같아요. 아기도 어린이집을 준비해야 하고 모든 게 바쁠 수밖에 없는 시기였죠. 장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두 사람은 쌍둥이 자녀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고 있어 아빠 김영성은 가족을 통해 행복감도 느낀다. 물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 무탈한 것도 대단한 인생이구나 싶어요. 별일 없이 산다는 게 소중한 일이란 걸 깨달았죠. 어떻게 이렇게 한방에 무너지는 일이 생기나 싶어 몰래 담배 피우며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다행히 도윤주는 건강을 회복 중이고 작품도 준비하고 있다. "'빅슬립' 시사회 때 윤주가 여기저기 연락 돌리면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모습이었어요. 사람들도 다들 와주고 영화가 좋다고 얘기해 줘서 고마웠고요. 감독님이 뜻깊은 선물을 만들어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젠 윤주도 환자가 아니라 일반인처럼 되어가는 중이예요. 머리카락과 눈썹도 자라고 가족도 안정화가 되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김영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면서도 "사람들이 우리를 안쓰럽고 측은하게 바라보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올해의 배우상 수상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것도 역시 아내 도윤주다. "이야기를 듣고 윤주가 오열을 하더라고요. 상 받고 뒤풀이하고 지친 기색으로 집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들꽃 같은 거친 풀을 모아서 꽃다발을 만들어 건네셨어요. '애썼다' 하시는데 뭉클했죠. 연세가 들면서 여려지시는 것 같아요. 물론 안 좋은 일도 많았지만 우리 가족에게 '빅슬립'은 큰 선물인 거 같아요."
그는 이 작품이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 각자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얘기하는 시선들이 있는 거 같아요. 부정적이고 무너지는 얘기를 하면 듣는 사람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잖아요. 다들 힘든데, 안아주고 응원한다는 거까진 모르겠지만 각자 인생을 열심히 살다 보면 옆에 좋은 동료가 있고 한번은 뜨겁게 우는 날이 온다는 얘길 하고 싶어요.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는 것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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