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수놓은 스마일처럼…긍정왕, 마침내 웃었다
지난해 암벽등반 즐기다 부상
선수 생명 끝나나 좌절도 잠깐
수년간 부진에 후원 끊겼지만
“재미있게 하자, 모자에 스마일”
릴리아 부 올해의 선수·상금왕
아타야 티띠꾼 ‘평균타수 1위’
“참고 견디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미래를 기다렸다. 지금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6년 차 베테랑 양희영(34)이 시즌 최종전에서 4년9개월 만에 통산 5번째 우승컵을 들고 상금 200만달러(약 26억원)를 거머쥐었다.
세계 36위 양희영은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부론GC(파72·6556야드)에서 열린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총상금 700만달러) 최종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5개, 보기 1개로 6언더파 66타를 치고 합계 27언더파 261타를 기록,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친 전날 공동선두 하타오카 나사(일본)와 교포선수 앨리슨 리(미국·이상 24언더파 264타)를 3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상위 60명만 출전한 최종전에서 대박을 터뜨린 양희영은 시즌상금 2위(316만5834달러)에 올랐고, 누적 총상금 1388만여달러(11위)로 박인비(1826만여달러·4위)에 이어 한국선수 중 두 번째 높은 순위로 뛰었다.
15세 때 부모를 따라 이민 간 호주에서 골프를 시작한 양희영은 2008년 LPGA 투어에 데뷔해 2013년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인천)과 2015, 2017, 2019년 혼다 LPGA 타일랜드(태국)에서 우승한 뒤 미국 본토에서의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 버금가는 투어 챔피언십에서 달성했다.
우승경쟁은 양희영과 나사의 매치플레이 같았다. 양희영은 1타 차로 뒤진 13번홀(파4)에서 75야드 샷이글을 성공하며 첫 역전을 이뤄냈고 나사의 14번홀(파5) 버디와 16번홀(파3) 보기 이후 1타 차 선두로 맞은 17번홀(파5)에서 버디를 낚아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양희영은 지난해 암벽등반을 취미로 즐기다 왼쪽 팔꿈치 인대 부상을 당해 한동안 고전했다. “우승공백이 길어지면서 다시 우승할 수 있을까 의심했고, 특히 부상 이후엔 선수생명이 일찍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며 “코치에게 더 이상 못할 것 같다는 말도 했는데 의사와 코치진 등 팀의 도움으로 극복했고, 그래서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16시즌 통산 85회 톱10을 기록하면서 양희영은 아쉬운 순간도 많이 겪었다. 특히 US여자오픈에서 두 차례 준우승하는 등 메이저대회에서만 21차례 톱10에 오르고도 우승컵은 들지 못했다. “메이저대회에서의 실패는 아픈 기억이지만, 다시 힘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고 돌아본 그는 “골프와 일상생활에서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한 게 롱런 비결이 됐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도 일정한 밸런스로 스윙하는 샷이 우승할 수 있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성적을 내지 못해 후원사가 끊긴 양희영은 모자 앞면에 작은 스마일 마크를 달고 시즌을 치렀다. “그냥 비워두기는 싫었고, 재미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스마일을 직접 수놓았다”는 그의 밝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고진감래의 결실을 맺었다.
지난주 시즌 4승으로 셀린 부티에(프랑스)와 공동 다승왕이 된 세계 1위 릴리아 부(미국)가 이 대회 4위(21언더파 267타)에 올라 올해의 선수, 상금왕(350만2303달러)을 차지했고 아타야 티띠꾼이 평균타수 1위(69.533타), 유해란이 신인왕에 등극하며 시즌을 마쳤다.
한국선수들은 고진영(2승), 김효주, 유해란, 양희영이 시즌 5승을 합작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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