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만으로 오래된 갈등 멈출 수 없어…‘적 아니다’ 공감대 위한 긴 프로세스 필요”

손우성 기자 2023. 11. 2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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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병역거부자가 말하는 ‘이·하마스 전쟁’
이스라엘 병역거부자 오르가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신변 보호를 위해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조태형 기자
18세 때 병역거부, 4개월 반 수감생활…“배신자” 소리 들어
이, ‘하마스 절멸’ 말하지만 복수 위해 다른 조직 생겨날 것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해 이스라엘인 1200여명을 잔인하게 살해하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곧바로 ‘하마스 절멸’을 선언하며 가자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지상군까지 투입했다. 병원과 학교, 난민촌에는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졌고, 어린이 5000명을 포함해 최소 1만200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은 17만3000명의 현역 군인과 46만5000명에 이르는 예비군을 끌어모았다. 유치원서부터 18세가 되면 누구나 입대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는 이스라엘인 상당수는 이번 전쟁을 통해 하마스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묵묵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와 평화 정착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모든 폭력과 살상을 거부해야 갈등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신념으로 이스라엘에서 15년 전 징집을 거부하고 시민단체 ‘뉴프로파일’에서 병역거부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오르를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만났다.

그는 “언젠가 이 갈등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징집 요구는 언제 받았나.

“15년 전이었다. 18세 때 병역을 거부했다. 그리고 4개월 반 수감 생활을 했다.”

- 병역 거부를 결심한 이유는.

“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자랐다. 10세 때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투쟁)가 발생했다. 자폭 테러로 식당과 버스가 폭발하는 모습을 봤다.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어갔다. 당시 이스라엘은 매우 극우적이었다. 주변 사람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아랍인과 유대인이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내 가족은 모로코와 이란에서 왔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14세 때 친구들과 함께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갔고, 그곳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처음으로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징집에 응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징집된다면 내 친구들과 가족을 해칠 수도 있게 될 것이 분명했다.”

-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없었나.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가족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병역 거부를 결정했을 때 부모님이 화를 많이 냈다. 감옥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도 어머니는 받지 않았다. 당시 군 복무 중이던 쌍둥이 오빠는 나를 지지해줬다. 하지만 주변에서 ‘배신자는 가자지구로 보내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회생활도 쉽지 않았다. 다만 나에게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커뮤니티가 있다. 그럼 괜찮다고 생각했다.”

- 복무를 거부하는 사례는 얼마나 되나.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1년에 2~5명이라고 알고 있다. 다만 군 내에서도 서안지구나 가자지구에서는 복무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공습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 특정 행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자는 누구나 징집 대상이기 때문에 전쟁이 싫어서 이스라엘로 피란 온 우크라이나인도 군대에 가야 한다. 이 경우 심사위원회에서 복무 면제를 받으려면 자신이 평화주의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 ‘뉴프로파일’은 이런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다.”

- 전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심경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오전 6시20분 알람을 듣고 대피소를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혼돈 그 자체였다. 미디어를 통해서도 정확히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하마스가 대피소를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죽인다는 소식도 들렸다. 주민들은 경찰과 군대에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소용이 없었다. 문을 잠그고 10시간 넘게 나가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핵심이 있다. 나는 알람 시스템과 대피소가 갖춰진 곳에 살고 있지만, 지금 가자지구에 있는 내 친구들은 그마저도 없다는 사실이다. 공습이 벌어져도 몸을 숨길 곳이 없다.”

- 동료나 친구 가운데 이 전쟁에 참여한 경우가 있나. 그들은 뭐라고 하는가.

“정치적 견해에 따라 조금씩 갈린다. 다만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들린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팔레스타인인을 한 명이라도 쏜 사람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가 모든 인질을 석방할 때까지 휴전은 없다는 입장이다.

“거짓말이다. 그들은 인질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이미 공습으로 이스라엘 인질이 죽었다. 인질 석방을 조건으로 (교전 중지) 협상 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현재 이스라엘이 체포하고 감금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인질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9세 팔레스타인 어린이도 구금하고, 재판받을 권리도 제한해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들을 인질이라 말하지 않는다.”

- 하마스 절멸이라는 이번 전쟁 목표는 달성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이번 전쟁으로 가자지구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다. 하마스 대원들이 다 죽어도 복수를 위한 또 다른 조직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민간인을 공격한 하마스의 폭력은 잘못됐지만, 지금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제노사이드(대량 학살)와 다를 바가 없다.”

- 이 끔찍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 전쟁은 오래전부터 계속됐다. 휴전만으로 이 갈등을 멈출 수 없다. 더 긴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우선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거대한 무기 실험장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둘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만나야 한다. 적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셋째,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 상황을 알아야 한다. 고통과 점령이 얼마나 가혹한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진실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미안해’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의 삶을 파괴하고 집을 뺏었다’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에게 심리 치료와 사회 보장을 제공해야 한다. 일자리 지원도 필요하다. 사회 재건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팔레스타인인이 자유롭게 정당을 만들고, 자신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이스라엘 정부가 더 강경한 정책을 펼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면 더 많은 죽음과 공습이 있을 것이다. 극우 정부는 폭력을 정당화할 것이다. 지금도 소셜미디어에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올리기만 해도 추적을 당한다. 이를 막고자 하는 사회운동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 이스라엘 내에서도 가자지구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나.

“당연히 있다. 물론 많은 사람이 대놓고 말하기 무서워한다. 그러나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수백명의 유대인과 아랍인이 전쟁에 반대한다며 텔아비브에서 대규모 시위를 펼쳤다.”

- 신념을 지키기 쉽지 않을 텐데.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중에는 아무도 전쟁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결국 끝이 나지 않았나. 우리는 언젠간 이 갈등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희망과 신념을 버릴 수 없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계속 메시지를 내야 한다. 우리는 친구이고 함께 일할 사이라는 점을 말해야 한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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