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에 무시 당한 윤석열식 ‘편향외교’…한반도 평화외교 흔들
[윤석열 정부]
‘한반도 평화 외교’가 길을 잃었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란 이름의 ‘편향외교’ 탓에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이끌 나침반이 고장 난 듯하다. 지난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30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는 한반도 평화외교의 ‘실종’을 알리는 경보음과 함께 ‘윤석열식 편향외교’의 민낯을 드러냈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무산은 문제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19일(현지시각) “머지않은 시점에 양국 외교장관이 만날 것이므로 한-중 간 현안은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고 했지만, 제 논에 물 대기 식 둘러대기다.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주권국가 사이의 관계에선 열번의 장관회담보다 단 한번의 정상회담이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한-중 정상회담은 지난해 11월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25분 대면 회담이 유일하다.
한-중 정상회담 무산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시 주석과 65분간 양자 정상회담을 한 사실에 비춰 보면 더욱 뼈아프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모두 미국과의 양자 동맹과 한·미·일 3각 협력에 힘을 쏟는 탓에 중국과 갈등하고 있음에도 한, 일이 ‘다른 성적표’를 쥐게 돼 더욱 그렇다. 중·일 정상은 “갈등이 있지만 협력이 필요하다”며 ‘전략적 호혜관계’를 재확인했다. 다자 회의 계기에 1시간 넘는 만남은 중·일 모두 양자 정상회담을 강하게 바랐음을 드러낸다.
중국과 ‘호혜관계’의 필요성은 한국이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이며 사실상 북한의 ‘후견국’으로 불린다. 한국의 경제 발전,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중국의 전략적 협력은 기호품이 아니라 필수재다.
둘째, 윤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양자 정상회담을 하지 못한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로선 한·미·일 정상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8월18일)에 이어 지난 16일 ‘10분 비공개 회동’을 했으니, 한·미 정상회담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16일 바이든 대통령과 15분간 양자 정상회담을 했다.
한-중,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심상찮은 조짐이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이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도 양자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은 사실은 한-중 관계의 앞길이 지금까지보다 더 험해질 수 있다는 ‘경보’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 ‘생략’은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일 3국 협력을 압박하면서도 일본과 한국을 차별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일 한겨레에 “윤석열 대통령이 가치외교란 이름의 편향외교로 내달려 한국의 독자적 목소리와 외교적 자율성을 잃은 후과”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의 ‘평면 외교’ 탓에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을 신경 써 챙겨야 할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한국 외교의 존재감 상실은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도드라졌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 15일 취재진에 공개된 회담 머리발언에서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회담 뒤 바이든 대통령의 단독 기자회견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단 한차례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중국 쪽이 낸 회담 결과 발표문에도 한반도 문제는 없었다. 한반도 부분은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의지를 강조했다”는 백악관 자료의 이 문구가 유일하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미·중 모두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라는 사실에 비춰 볼 때 미·중 정상의 무관심은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외교의 동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다른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외교란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상대방의 전략을 바꿔 한 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예술인데, 윤 대통령이 냉혹한 국제관계에선 작동될 수 없는 이른바 ‘가치외교’로 오히려 외교적 선택지를 좁혀온 탓”이라고 비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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