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후원 없어서 … 민무늬 모자에 '스마일' 수놓고 부활

조효성 기자(hscho@mk.co.kr) 2023. 11. 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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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영 CME챔피언십 우승
4년7개월 만에 통산 5승
美 본토 대회선 첫 성과
26억 잭팟, 상금랭킹 2위
올해 LPGA 최고령 챔프
대회 72홀 최소타 신기록
20일(한국시간) 끝난 LPGA 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최종일. 양희영이 우승을 확정한 직후 동료들이 양희영에게 샴페인 세례를 하며 4년7개월 만의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얀 모자 중앙에는 기업 로고가 아닌 '스마일' 무늬만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긴장 속에서도 자신이 새겨 넣은 무늬와 똑같은 미소를 머금은 양희영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종전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무려 1729일 만에 다시 맛본 우승. 극도의 부진으로 메인 스폰서가 사라진 민무늬 모자를 썼지만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골프에만 집중한 '긍정의 힘'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클럽 골드코스(파72·6556야드)에서 열린 2023 LPGA 투어 최종전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4라운드. 하타오카 나사(일본)와 공동 선두로 우승 경쟁을 시작한 양희영은 초반 흐름이 좋지 않았다.

3번홀(파4) 보기로 시작해 12번홀까지 버디 3개를 잡아냈지만 하타오카에게 1타 뒤진 2위로 순위가 내려갔다. '양희영의 기적'은 이후에 시작됐다. 13번홀(파4)에서 80야드를 남기고 친 58도 웨지샷이 홀을 넘어간 뒤 백스핀이 걸려 홀 속으로 사라졌다. 2타를 줄이는 이글로 다시 선두에 오른 양희영은 끝까지 타수를 잘 지켰고, 막판 17번홀과 18번홀 연속 버디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이글 1개와 버디 5개, 보기 1개로 6타를 줄인 양희영은 합계 27언더파 261타로 공동 2위(합계 24언더파 264타)에 오른 하타오카와 앨리슨 리(미국)를 3타 차로 제치고 올 시즌 '최고령(34세3개월22일) 챔피언'이 됐다. 특히 이날 양희영은 이 대회 최다 언더파 신기록을 세웠다. 이전 기록(23언더파)을 4타나 경신했다. 또 '53홀 연속 노 보기'는 LPGA 투어에서 역대 두 번째로 긴 기록이다.

가장 기쁜 것은 역시 돈. 양희영은 여자골프 사상 최다 우승 상금인 200만달러(약 26억원)를 받았다. 시즌 상금도 316만5834달러로 늘리며 상금랭킹 2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무엇보다 양희영은 2019년 혼다 LPGA 타일랜드 이후 96번째 대회이자 4년7개월 만에 통산 5승 고지를 밟았고, 미국 본토에서 열린 LPGA 투어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우승해 기쁨이 더했다. 특히 2007년부터 플로리다주에 사는 양희영은 자신의 동네에서 꿈을 이뤄 관심을 모았다.

"경기 내내 무척 긴장됐다. 하지만 스스로 '나는 할 수 있다'고 되뇌며 노력했다"고 소감을 말한 양희영은 "나는 항상 미국에서 우승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시즌 최종전에서 그 소망을 이룬 것은 큰 영광"이라며 기뻐했다.

이날 많은 사진가들이 양희영 모자를 집중해서 찍었다. 기업 로고가 아닌 작은 '스마일 로고' 때문이었다. 양희영은 "올해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지만 모자를 공백으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소 모양을 새겨 넣었다"고 설명했다.

양희영이 '민무늬 모자'를 쓰고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에도 메인 스폰서와 계약이 만료된 직후 민무늬 모자를 쓰고 출전한 LPGA 혼다 타일랜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우리금융과 후원 계약을 맺었지만 4년간 특별한 활약을 못하며 지난 3월에 계약이 끝났다. 그리고 또다시 스폰서 없는 모자를 쓰고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양희영에게는 '민무늬 모자 우승' 말고 '홀수 해 우승' 특징도 있다. 2008년 LPGA 투어에 입성해 2013년 한국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거둔 양희영은 이후 태국에서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만 세 차례(2015·2017·2019년) 우승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우승 흐름이 끊기긴 했지만 2023년에 다시 트로피 한 개를 추가했다.

이번 우승은 무엇보다 달콤하다. 은퇴까지 고려하게 했던 부상을 딛고 다시 일어섰기 때문. "16번째 시즌인데 부상도 있고 해서 은퇴 고민이 많았다. 코치에게 내가 더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제 시드 부담과 돈 걱정이 사라진 양희영은 다음 일정을 기다리고 있다. 친한 친구인 제니퍼 송(미국)의 캐디를 맡아 LPGA 퀄리파잉(Q) 시리즈에 참가하는 것. 양희영은 "제니퍼는 좋은 친구다. 나는 그를 돕고 싶었다. 사실 캐디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많이 된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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