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무고’의 아이콘처럼 떠받들어지던 시인과, 동조하던 이들의 침묵 [플랫]

플랫팀 기자 2023. 11. 2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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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응원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한때 성범죄 무고의 아이콘처럼 떠받들어지던 시인 박진성의 형사 2심 실형 선고 이후의 분위기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지난 11월 8일, 자신이 성범죄 무고를 당했다며 피해 신고자의 신원을 공개하고 비난하던 박진성은 결국 명예훼손 혐의로 1년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그에 대한 성희롱 피해 고발이 있고 나서 무려 7년이 지난 후다. 2016년 트위터(현 엑스)를 통해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벌어지던 즈음, 과거 박진성에게 시를 배웠던 10대 김현진은 자신이 당한 성희롱 피해에 대해 고발했다. 처음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문도 올렸던 박진성은 하지만 어느 시기부터 무고함을 주장했고, 자신의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은 언론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하기도 했다. 해당 승소 이후 어느 순간 박진성은 ‘허위 미투’ 혹은 ‘변질된 미투’의 무고한 피해자(부연이 필요한데, 현재 성범죄 고발이 모두 미투 운동으로 환원되는 경향이 있지만, 트위터에서의 ○○ 내 성폭력 고발은 그보다 2년 앞선 것이다)의 지위를 획득했다. 기세등등해진 그는 처음 자신을 고발한 김현진을 무고 가해자로 몰며 신상을 공개하고, 2019년 그를 상대로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무고녀’라는 혐오의 라벨링이 붙은 피해자가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지만, 세상의 다수는 박진성의 편이었다. 김현진과의 첫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던 2020년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자살 암시 글을 올리고 잠시 행방불명되자 전 법무부 장관 조국은 페이스북을 통해 “박진성 시인이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접하고 많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중략) 관련 언론사 정정보도문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그의 성희롱 의혹을 허위보도로 치부했다. SBS 라디오 <허지웅 쇼>를 진행하던 평론가 허지웅은 “무고로 인한 누명을 벗은 뒤에도 끝을 알 수 없는 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던 시인이 유서를 남긴 채 사라지고”라는 감성적 오프닝 멘트를 남겼다. 하지만 첫 민사부터 이번 형사고발까지 김현진의 승소가 이어지고 박진성이 결코 무고하지 않으며 교묘하게 피해자를 괴롭혀왔다는 사실이 드러날수록 박진성의 이름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그런 사람이 없었고 그에 대한 응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난 8일, 자신이 성범죄 무고를 당했다며 피해 신고자의 신원을 공개하고 비난하던 시인 박진성이 명예훼손 혐의로 2심에서 1년8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JTBC <뉴스룸> 보도 갈무리, 기사 제목 갈무리

📌[플랫]법원 “박진성 시인 ‘가짜미투’ 주장, 대부분 허위”

📌‘딸뻘 제자 성희롱’ 박진성 시인, 2심도 패소···배상금 ‘3배’로 늘어난 이유는

박진성의 거짓말에 놀아났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를 무고의 아이콘으로 활용하고선 침묵 중인 이들을 호명하고 구체적인 책임을 묻기 전에 미리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투명한 관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박진성이 2018년을 기점으로 무고의 희생자라는 지위를 얻기 시작할 즈음, 나는 그가 스스로 칼럼을 통해 고백했듯 자살 협박으로 여성과의 성관계를 끌어낸 사실이나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 그가 편의적으로 제시하는 의심쩍은 증거들을 봤을 때 그를 마냥 불의의 피해자로 불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고, 이후 그는 고소 협박을 비롯해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결과적으로 내가 옳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느낀 피로함은 상당했지만, 직접적 피해자인 김현진이나, 성범죄 의혹을 최초 보도했다가 정말 집요하게 공격당하고 정정보도 이후 경력에 흠이 간 H기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걸 말하고 싶다. 많은 이들이 미투 운동 이후 한국의 공론장이 여성에게 치우쳤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박진성의 사례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하지만 실제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수혜를 본 것은 그와 그의 동조자들이었다. 작가 박가분은 2020년 트위터를 통해 “트페미(트위터 페미니스트) 세계에서는 박진성 시인을 이미 범죄자인 것처럼 확정 지었는데 이게 얼마나 저 동네가 갈라파고스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 현실은 대표적 성범죄 무고 사례로 교육되고 있는데 말이다”라고 단언했다. 물론 실제로는 반대였지만, 실재의 무게는 김현진과 몇몇 연대자들만이 감당하고 있었다.

지난 8일, 자신이 성범죄 무고를 당했다며 피해 신고자의 신원을 공개하고 비난하던 시인 박진성이 명예훼손 혐의로 2심에서 1년8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해당 소식을 보도하며 피해자인 김현진씨의 소감을 전했다.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박가분이 인터넷 매체 리얼뉴스에서 자칭 원조 페미니즘 운동가라 하는 오세라비 등과 함께 일관되게 미투 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을 폄훼해왔다는 걸 생각하면, 박진성을 ‘대표적 성범죄 무고 사례로 교육’하고 있던 건 사실 박가분 본인이라 해도 될 것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폐쇄적이며 왜곡됐으며 폭력적이라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해당 사례는 효율 좋은 교재였다. 노동 르포 작가에서 페미니즘 비판으로 전장을 옮긴 이선옥 역시 시사평론가 김용민과 함께 만들고 진행한 유튜브 콘텐츠 <우먼스플레인> ‘미투의 그늘 feat 박진성 시인 사례’ 편에서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이 교재를 활용한다. 피해 여성들이 박진성을 고소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으며 오히려 상대 여성들이 명예훼손과 무고로 처벌을 받았고 그들이 허위사실을 고백했다는 박진성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그는, 심지어 당시 무고가 트위터의 유행이었다고까지 말했다. 이것은 2016년부터 시작된 ○○ 내 성폭력 고발 운동에 대한 저주에 가깝다. 그가 말한 허위사실에 대한 여성들의 고백 중 상당수는 출처가 불분명한 것이었다. 최근까지 김현진 본인이 자백했다고 알고 있던 이들조차 있을 정도다. 해당 방송에서 이선옥은 최초 보도한 신문이 정정보도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진보언론이 박진성의 억울함은 다루지 않으며 미투 관련 보도에선 황색언론 수준의 기사를 쓴다고 매도했지만, 정작 교차검증 없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박진성의 주장만 전한 건 이선옥 본인이다. 그저 박진성의 교활함에 속았을 뿐 악의는 없었을까. 같은 방송에서 그는 문단 내 성폭력 제보자로 JTBC에 출연한 출판노동자 T의 자격을 문제 삼으며 “문제가 있는 사람을 내세울 땐 돌아오는 부작용을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진성을 내세워 미투 운동을 폄훼한 그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면 좋을 말이다.

어떻게 이런 사기극이 가능했는가. 방관과 동조 때문이다. 초기 보도에서 박진성의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은 절차적 문제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들이 있었다. 언론들은 그것을 파고드는 대신 그에게 쉽게 성범죄 무고의 피해자라는 타이틀을 부여해주었다. 정정보도나 손해배상의 사례를 이미 보았으므로. 적극적으로 방관한 언론의 타이틀은 그럼에도 쉽게 권위를 얻었고, 박진성 본인과 그를 허위 미투의 아이콘으로 활용하고픈 동조자들에게 무기가 되었다. 진실을 알려는 노력은 없었다. 허지웅이 박진성의 자살 예고와 행방불명에 이입한 건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수 있다. 다만 자살 협박을 빌미로 여성들과 잠자리를 갖고, 성희롱 폭로가 나온 초기 동생인 척 ‘형(박진성)이 죽었습니다’라는 트윗을 올렸다가 부활했으며, 2018년에도 자살 소동 영상을 찍으며 H기자를 저주하는 등 자살을 무기 삼아 여론을 통제해온 그의 전적을 알았더라면 좀 더 신중히 발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에도 박진성은 아버지인 척 아들(박진성)이 죽었다는 부고를 알렸다가 다시 부활했다. 물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영향력을 위해 박진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박가분, 이선옥과 그저 안일하게 자살 소동에 이입했던 조국과 허지웅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판할 수는 없다. 책임에 차등은 있다. 그리고 이제 가장 큰 책임을 물을 차례다.

박진성을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활용한 건 안티 페미니즘 진영에 가까운 박가분, 이선옥이 아닌 스스로를 페미니즘 철학자로 소개하는 강남순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 교수다. 그는 조국, 허지웅처럼 박진성의 자살 예고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성폭행 의혹만으로 이미 주홍글씨가 붙여진 P라는 시인이 있다. 그 의혹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진 후에도 초기에 피해자 편이라는 의로운 사람들에 의하여 성급하게 붙여졌던 성폭력 가해자라는 주홍글씨의 낙인은 그 존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라는, 역시나 박진성의 주장에만 의존한 사실관계에서 출발한 글은 “정의와 의로움의 이름으로 한국 사회 도처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붙어 있는 정죄의 주홍글씨”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글이지만 강남순 교수가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전유해 전 서울시장 박원순의 성희롱 의혹과 자살을 현학적인 문제로 꼬아놓고, 페미니즘이 “정치계와 여성단체들에 의해서 파괴적으로 소비되었다”고 주장한 사실과 연결했을 때 글의 불순한 의도가 더 잘 드러난다. 그는 파괴적 소비가 아닌 진실의 복합성을 찾는 “페미니즘 문해력”을 얘기했다. 그의 페미니즘 문해력이란 여성단체들이 외롭게 분투하고 피해자를 ‘꽃뱀’으로 모는 흔한 2차 가해가 박원순 지지자들에 의해 벌어지는 현실의 맥락을 좇는 대신 잘 모르는 한국 사정을 우아한 개념으로 편의적으로 해석해 구체적 페미니즘 투쟁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박진성에 대한 글에서처럼. 이처럼 각 명망가와 언론, 커뮤니티에서 박진성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소비했는지는 지난 몇 년간 공론장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해석하고 전유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검사에 가깝다. 이제 그 검사지를 확인할 때가 됐으나 정작 더는 박진성이라는 이름이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 침묵이 경멸스럽다.

▼ 위근우 칼럼니스트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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