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얼아이엠’…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겨레 2023. 11. 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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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김누리 중앙대 교수, 김겨울 작가, 소병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임상조교수 등이 ‘히얼아이엠’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왜냐면] 오준 |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지난봄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정기감사를 통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임시 신생아 번호만 남아 있는 아동 실태를 점검했다.

결과 보고서를 보면, 6179명의 출생 미신고 아동 가운데 보호자가 외국인인 아동이 4025명이었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불린 이 아이들은 영아 살해, 아동 매매, 아동 유기 등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국회는 서둘러 회의를 열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아동의 출생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도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체계 개선 추진단’을 만들어 제도 개선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도 미등록 이주 아동과 같은 외국인 아동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위기 임산부 지원을 위한 논의나 출생 미신고 아동의 조기 발견을 위한 체계 구축에서도 외국인 아동은 대상이 되지 못했다. 현행 아동복지법을 보면, 실태조사를 포함해 위기 아동을 위한 공적 체계는 모두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아동으로 제한하고 있다. 아직 보편적 출생신고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는 외국인 아동의 출생 사실을 정식으로 기록하거나 증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외국인 아동의 삶은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그 아이들에게는 일곱 살이 되면 학교에 가고, 아프면 동네 병원에 가는 일상조차 당연한 일이 아니다.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때도 흔하다. 우리 사회에 함께 살고 있지만, 현재의 존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래를 꿈꾸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장소에서 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미등록 외국인 아동이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못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 존엄의 보장은 사회가 그들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출생등록에서 시작해야 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최근 진행하고 있는 ‘히얼아이엠’(Here I am) 캠페인은 이 아이들의 목소리에 더 많은 어른이 귀를 기울여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 제도를 도입하자고 호소한다.

지난 11월6일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제5차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대한민국 국가보고서 심의를 통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안’의 신속한 통과를 권고했다.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신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출생을 신고하도록 관련 조치를 마련하라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최종 견해는 2011년과 2019년 심의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됐다. 지난 12년 동안 유엔 사회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의 도입을 권고했다. 유엔의 각종 인권 관련 규약에 따라 미등록 이주 아동을 포함해 모든 아동은 차별 없이 출생등록, 보육, 교육, 보건의료 등을 누릴 권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위한 입법적 노력을 19대 국회부터 20·21대를 거치면서 계속했지만, 아직 결실이 없다. 법체계상으로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가족관계 등록제도에 편입하는 방식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으로 관련 입법이 폐기되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이를 감안해 우회적으로나마 특별법의 형태로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과 증명을 위한 절차 규정을 담았다.

그렇다고 외국인 신생아에게 우리 국적을 주자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모든 인간이 법 앞에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선진 민주주의 사회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현대 인권의 대원칙을 실현하는 사회다.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적 이기주의다. 태어난 모든 인간이 사회의 환대를 받고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출생등록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데 많은 분의 공감과 동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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