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패션기업들은 ‘재고’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곡소리 나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물가가 상승하고, 다양한 사회적 변화들이 생기면서 소비자들은 실속 있는 소비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획적이고 자신이 필요한 만큼 구매하거나 함께 모여 소비하며 낭비를 줄이는 ‘체리슈머’가 생겨나는 등 소비문화가 바뀌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급격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을 건너뛰고 바로 겨울로 넘어가고, 11월에도 날씨가 따뜻해 가을옷이 고스란히 재고로 남을 지경이다. 외투 등 다운점퍼류의 판매에도 영향이 크다.
이러한 환경에서 재고 관리는 패션기업들이 꼭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전통적인 패션산업 모델에서는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과잉 생산과 재고 과다, 그리고 이로 인한 할인 판매와 폐기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시장 변화는 재고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재고는 패션기업의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치며, 잘 관리되지 않으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재고는 기업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패션산업은 폐기물을 많이 배출하는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대부분 재고로 인한 것으로, 이 때문에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주목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미판매된 패션 재고품의 소각 및 폐기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이는 패션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패션기업들은 이제 재고를 최소화하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재고를 처리하는 등의 전략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주목되는 전략 중 하나가 ‘프리오더’ 시스템이다. 소비자들에게 시즌 컬렉션의 일부를 미리 공개하고, 제한된 수량만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시장 반응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정규 컬렉션 론칭 시 적정 물량을 예측할 수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휠라 같은 브랜드들은 이 전략을 통해 소비자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재고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기업 이랜드월드도 ‘무재고 경영’의 일환으로, 지난해 2월 서울 성동구 답십리에 약 300평 규모의 국내 생산 오피스인 ‘이랜드 스피드 오피스’를 오픈하며 업계 최초로 2~5일 생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랜드는 2~5일 생산 시스템을 통해 장기적으로 정확한 고객 수요를 예측해 팔릴 만큼만 생산해 재고 없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다른 접근 방식은 ‘무재고’ 시스템이다. 주문 후 제작 방식을 통해 재고를 거의 또는 전혀 남기지 않는 방식이다.
이 모든 것은 생산력이 관건이다. 근거리 소싱을 하고, 국내 생산으로 빠른 스팟생산과 리오더생산이 뒷받침 돼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또한 AI 기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정확한 사이즈 추천과 수요량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솔루션은 ‘제로 인벤토리’를 향한 길을 열어준다.
이와 같은 다양한 전략들은 패션산업이 지속가능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재고 관리는 단순히 비용 절감을 넘어서 환경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향한 중요하면서도 필수적인 단계다. 패션기업들은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계속 탐색하고 채택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박광규의 알쓸패잡] 재고 제로를 향한 패션산업의 혁신적 도전](https://images.khan.co.kr/article/2023/11/20/l_2023112002000148900069341.jpg)
■박광규는 누구?
이랜드그룹과 F&F에서 근무한 데 이어 EXR 중국의 임원을 거쳐 NEXO 대표이사를 지냈다. 현재는 서울패션스마트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패션산업에 30년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상공인 지원, 청년 인큐베이팅, 패션 융복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국 Gerson Lehrman Group의 패션 부문 컨설턴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