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인 100만명 유전체 빅데이터 구축, 맞춤형 치료제 개발 기여할 것”
전 세계 유전체 분석장비 시장 80% 점유...업계 1위
美·英·싱가포르 등 50여개국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 자문도
“바이오 빅데이터, 환자 특성에 맞는 치료제 개발 견인”
“CGP 선도하는 한국, 데이터 다양성 위해 적극 나서야”
“유전체(게놈) 정보는 미래 헬스케어 산업을 일으킬 씨앗 같은 자료입니다. 내년부터 한국에서 시작되는 바이오 빅데이터 프로젝트는 100만명에 이르는 한국인의 유전체 데이터를 모아 다양한 치료제 개발을 앞당길 겁니다. 일루미나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로버트 맥브라이드 일루미나 코리아 대표는 1일 서울 여의도 일루미나 본사에서 “영국과 미국이 유전체 데이터 구축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하면서 서양인의 바이오 데이터는 어느 정도 쌓였지만 동양인의 데이터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며 “인종과 국가별로 다양한 데이터가 있어야 글로벌 스탠다드를 알 수 있고, 각 특성에 맞는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과 일본의 세일즈 총괄을 맡고 있던 맥브라이드 대표는 올해 1월 한국 지사의 초대 대표로 선임됐다. 현재 일루미나의 한국과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맥브라이드 대표는 관할 범위가 넓어 평소 한국에 상주하지는 않고 있는데,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세계무역센터 샌디에이고 지부(WTCSD)의 대규모 무역사절단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둔 일루미나는 전 세계 유전체 분석 장비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유전체 분석 장비는 물론 진단 시약, 키트 같은 관련 원천 기술을 개발해 장비와 설비를 제조한다.
일루미나는 특히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술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DNA를 조각으로 나눠 해독한 뒤 다시 조립해 유전체 서열을 분석하는 기술로 최대 1만개의 유전자 돌연변이의 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정밀진단법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환자들은 자신의 유전자에 맞는 항암제를 찾아 맞춤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도 지난 2013년 NGS 검사를 통해 유방암·난소암을 일으키는 ‘BRACA1′ 유전자에서 돌연변이를 발견하면서 유방암 예방 절제술을 받았다. 스티브 잡스도 췌장암 치료 표적 유전자를 이 기술로 찾아냈다.
일루미나의 대표적인 NGS 장비는 ‘노바식(NovaSeq)’ 시리즈로, 가장 최신 제품인 ‘노바식 X 플러스’는 연간 2만명 이상의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랩지노믹스, 마크로젠, EDGC(이원다이애그노믹스), 테라젠바이오, 디엔에이링크가 주요 고객이다. 국내 유전체 분석 시장에서도 일루미나의 시장 점유율은 80%에 이른다.
맥브라이드 대표는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자 유전체 분석 기술의 수요가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는 나라”라며 “항암치료의 기반이 되는 포괄적인 유전체 프로파일링(CGP)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CGP는 한 번의 검사로 종양의 바이오마커를 파악하고 다양한 유전체 변이를 식별하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이다.
일루미나의 NGS 장비는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암 정복 프로젝트인 ‘캔서 문샷(Cancer Moonshot)’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대다수 유전체 분석 업체와 연구기관이 이미 일루미나의 장비를 쓰고 있다. 사실상 유전체 데이터 생산의 글로벌 표준인 셈이다.
미국과 영국, 싱가포르 같은 주요 국가에서 진행한 유전체 데이터 구축 사업에도 일루미나의 장비가 사용됐다. DNA 검체 채취부터 최종 데이터 분석까지 지원하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솔루션을 제공한 곳도 있다. 일루미나가 기술 파트너로 참여한 국가는 총 50여곳에 이른다.
맥브라이드 대표는 대규모 유전체 빅데이터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100만명 유전체 빅데이터 구축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영국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사업을 통해 50만명의 유전정보를 수집했다. 미국은 올 오브 어스(All of Us) 사업을 오는 2026년까지 수행해 100만명의 유전정보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도 수십만명 규모의 유전체 분석을 통한 맞춤형 치료법 개발을 준비 중이다.
한국은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을 추진 중이다. 내년부터 2032년까지 약 9년간 한국인 100만명의 임상 정보, 유전체 정보, 생애기록 등을 수집·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일반인뿐 아니라 희귀질환자, 중증질환자, 만성질환자가 포함된다. 한국인 맞춤형 치료법 개발을 위해 유전체 분석 결과는 학계와 제약업계에 공유된다.
일루미나는 앞서 2020년부터 진행된 2년간의 시범사업에 한국 기업들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맥브라이드 대표는 “한국은 IT나 병원 수준이 높아 데이터 구축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50여개국의 파트너로 경험이 풍부하고 앞서 한국 시범사업에도 참여한 만큼, 본 사업에서도 파트너로서 솔루션을 지원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NGS는 암의 정확한 진단과 맞춤치료를 가능하게 하지만, 지역 간 격차로 전 세계 모든 암 환자가 혜택을 고루 받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며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데이터가 모여야 한국인의 특성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일루미나는 한국의 유전체 분석 분야 스타트업들을 위한 인큐베이팅 역할도 하고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2022년 솔루션 센터를 국내에 열었다. 일루미나는 이들에게 NGS 서비스 지원에 대한 종합적인 교육과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맥브라이드 대표는 “유전체학이 지금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배경은 인적 자본”이라며 “한국에서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키우기 위해 일루미나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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