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희대의 '인생재판'… 증인 직접 신문해 10대들 누명 벗긴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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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재판을 받던 10대 청소년들은 2008년 10월 14일 결정적 순간에 몰렸다.
증인에게 마음을 열고 증언에 임할 것을 주문하며 솔직한 진술을 강조하자, 증인이 마지막 순간 진술을 뒤집었고 이들은 누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강압수사를 당했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결국 아이들의 상해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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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저기 앉은 아이들을 좀 보세요"
허위진술하는 목격자를 조희대가 설득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감동적 순간"

"증인, 이 재판장도 진실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 어린아이들을 보세요. 지금 증인 말이 맞다면 저들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증인이 잘못된 증언을 하게 되면 당신은 저 어린아이들을 억울하게 처벌받게 한 양심의 가책을 평생 안고 살게 됩니다."
(2008년 10월, 증인을 직접 심문한 조희대 부장판사)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재판을 받던 10대 청소년들은 2008년 10월 14일 결정적 순간에 몰렸다. 이들의 살해 정황을 증언해 줄 목격자가 있었기에, 폭행치사 유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2심 재판장인 조희대 서울고법 부장판사(현 대법원장 후보자)가 재판 마지막 단계에서 직접 증인신문을 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증인에게 마음을 열고 증언에 임할 것을 주문하며 솔직한 진술을 강조하자, 증인이 마지막 순간 진술을 뒤집었고 이들은 누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15년 전 당시 형사법정에 있었던 이들은 '법관 조희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수원 노숙소녀 살해사건의 전말

사건은 2007년 5월 14일 시작된다. 경기 수원시 한 고등학교에서 15세 안팎의 소녀가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수사기관은 당시 수원역 일대에서 노숙을 하던 정신지체장애인 A씨와 B씨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같은 해 A씨는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5년을, B씨는 공동폭행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확정받았다.
사건은 검찰이 이듬해 1월 당시 '비행청소년 5명이 범행에 가담했다'며 기소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앞서 형을 확정받은 두 사람이 "꼬맹이들을 봤다"는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강압수사를 당했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때 그 아이들의 국선변호를 맡은 이가 바로, 나중에 '재심 전문 변호사'로 잘 알려진 박준영(49) 변호사다. 당시 '청년 박준영'의 고민은 깊었다. 검찰이 유도신문하고 자백을 강요하는 영상을 무죄의 증거로 찾아냈고 모든 사건 관련자들이 아이들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벌금형을 받았던 목격자 B씨가 사건 당시 아이들을 봤다는 증언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결국 아이들의 상해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박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 마지막 날 재차 B씨를 법정에 세웠다. 그러나 B씨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모든 게 끝나려는 그때 조희대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고 한다. 판사실에서 검찰조사 영상을 볼 때도 별말이 없었던 그는 B씨에게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라"며 "벌금형만 받게 됐는데 이제 와 증언을 바꾸려니 수사기관에 미안해서 그러느냐"고 물었다.
얼굴을 파묻고 침묵하던 증인은 결국 고개를 들고 "판사님 말씀이 다 맞다"며 울기 시작했다. 이어 "사실 저 아이들을 처음 본다"며 "검사가 벌금형으로 풀어주겠다고 해서 거짓 증언을 했다"고 털어놨다.
"재판 무게를 받아들이는 법관"
B씨의 증언 번복 덕분에 아이들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B씨를 포함해 앞서 형이 확정됐던 A씨도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었다.
이날의 장면은 조 후보자의 뇌리에도 깊이 박혀 있는 재판이다. 조 후보자는 2021년 한 사립대 강연에서 이 사건을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으로 꼽았다. 법조계에선 "재판의 무게를 최대치로 느끼는 조 후보자 성향이 가장 극적으로 발현된 사례"로 평가한다.
박준영 변호사에게도 이 사건은 자신을 '재심 전문 변호사'로 이끈 재판으로 기억된다. 박 변호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조희대 후보자가 상당한 역할을 했음에도, 변호사였던 저만 주목을 받았다"며 "당시엔 의욕만 앞섰던 변호사였는데,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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