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원작가 길승수 “부족한 사료 속 지워진 영웅 꺼내고 싶었다”

김진형 2023. 11.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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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춘천 출신 길승수 작가
KBS 대하사극 원작 소설 집필
고려시대 거란 2차 침입 재조명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1위도
“무협지 될까 해외 역사서 탐독
민중 하나로 모았던 명군 현종
전쟁 양상 바꾼 양규 활약 조명
정부가 백성 지켰던 좋은 사례”
▲ 소설 ‘고려거란전쟁’을 펴낸 길승수 작가가 최근 춘천시립도서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한민족이 겪은 전쟁 중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대중에게 비교적 익숙한 소재다. 하지만 고려거란전쟁의 경우 서희와 강감찬의 활약에 대해서만 단편적으로 아는 경우가 대다수다.

춘천 출신 길승수 작가의 장편소설 ‘고려거란전쟁-고려의 영웅들’이 최근 KBS 대하사극으로 방영, 역사소설의 의미를 다시 일깨우고 있다.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도 TV시리즈 부문 국내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소설은 2018년 ‘고려거란전기:겨울에 내리는 단비’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작품을 전면 재수정한 작품이다.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중퇴한 작가가 2009년 집필을 시작, 소설과 드라마로 나오기까지 14년이 걸렸다. 작가는 2019년 고려거란전쟁을 다룬 다큐 ‘평화전쟁’의 대본 작가와 자문으로 참여했고, 지난 5월 전쟁의 전반적 맥락을 소개하는 동명의 역사책도 펴냈다. 1010년 40만 대군을 거느린 거란의 2차 침입을 막아낸 명장 ‘양규’와 고려의 숨은 영웅들 이야기가 호쾌한 영웅서사의 감동을 전한다. 특히 역사 고증에 충실해야 한다는 작가의 집념은 ‘검차진’ 등 다양한 진법과 무기도 소개하며 현실성을 더한다. 특히 양규의 곽주 탈환 장면은 소설의 백미로 꼽힌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원작 소설가이자 자문위원인 길승수 작가를 춘천시립도서관에서 만났다. 그는 강감찬의 ‘구주대첩(귀주대첩)’을 소재로 한 고려거란전쟁 후속작을 집필중이다.

▲ 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소설 집필 계기는.

“춘천에서 수학교습소를 운영했다. 가르치던 학생이 지각해서 ‘성실해야 한다’고 타일렀더니, 얼마 후 ‘선생님이 성실한 사람이면 여기 없었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때부터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워낙 좋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역사소설은 중국이 늘 우위라고 생각했는데 1990년대 초 일본 문화가 개방된 후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읽고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역사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시대를 소재로 정한 이유는.

=“조선시대에 비해 고려는 사료가 부족하다. 분명 잘 다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록이 없어 스토리텔링을 못했다. 작가들도 이점을 어려워한다. 소설을 쓰려고 마음 먹었던 당시 북한에서 먼저 고려사 완역도서가 나오는 등 시기가 맞아 떨어진 부분도 있다. 송나라, 요나라 역사도 공부했다.”


-집필 과정을 소개해달라.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1년 정도 써보니 역사소설이 아니라 무협지가 되는 것만 같았다. 삼국지처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써야 하지만 기록이 없어 오래 걸렸다.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고려사의 기록은 약 10장 뿐이다. 무기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책, 송나라 때 이야기들을 참조했다. ”


-소설이 드라마로 이어진 계기는.

“무명 작가로서 유명 영화사를 비롯해 많은 곳에 소설을 돌리면 누군가가 읽을 것이라 생각했다. 2019년 한 방송사에서 연락을 받아 ‘평화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자문을 했다. 이후 작품이 점점 알려지게 됐고 이후 드라마 원작계약을 하게 됐다.”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다. 직장인처럼 오전에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로 출근해 저녁에 집에 돌아간다. 2018년까지 수입이 없다가 대본 작업과 드라마를 하면서 강연요청도 들어와 수입이 생겼다.”


-문체보다는 서사가 강한 편이다. 문학계에서는 주목도가 높지 않았다.

“여러 문학상에 투고했지만 빛을 보지 못해 힘들었다. 순수문학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역사소설은 바깥 장르다. 예술성도 좋지만 장르가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도 키워줘야 한다고 본다.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높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사는 원작을 재가공하는 곳이지 창조하는 곳이 아니다. 깊이 있는 대하사극을 원한다면 방송사 대신 문학계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용어들이 복잡하고 어렵다. 인물도 많고 모르는 것 투성이다.

“어떤 작품이라도 전반적인 내용을 알고 보면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고려시대를 잘 알지 못하니 더욱 어렵다고 느끼시는 것 같다. 분명 넘어야 할 과제다.”


-거란 입장도 세밀하게 집필했다.

“주인공이 멋있으려면 빌런(악역) 또한 대단해야 한다. 오히려 고려보다는 거란 연구가 쉬웠다. 고려사보다 내용도 많고 벽화 같은 것들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첫 방송 소감은.

“긴장한 상태로 보게 됐다. 전쟁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본다. 조마조마하다. 전투 장면의 경우 예전과 달리 진형을 만들어 싸우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 좋았다. ”


-고려거란전쟁이 주는 역사적 의의는.

“우리나라 역사소설들은 주로 민중들을 다룬다. 그런 소설들의 분위기를 보면 정부는 나쁘고 민중은 정의롭다. 다른 맥락으로 정부가 잘했던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려는 성종과 현종이라는 명군과 함께 좋은 신하가 있었기 때문에 민중을 하나로 모아 거란을 막을 수 있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고려가 동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하며 태평성대를 이뤘다. 몽골의 침략은 애교에 불과했다. 이들이 백성의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면 몇배나 강한 적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위기가 있었기에 영웅이 나왔다. 영웅의 탄생 과정에는 운이라는 측면도 작용하는 것 같다.”


-소설의 주역 ‘양규’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

“대단하고 말이 안되는 인물이다. 자신이 맡은 지역만 지키고 거란군이 남하하는 것을 지켜봤어도 문제 없었을 텐데, 1700명의 병력으로 6000명이 지키는 성곽을 공격해 성공시켰다. 양규가 바꿔놓은 하나의 전투가 말도 안되는 전쟁을 성공시켰다. 쓰면 쓸수록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고 눈물이 난다.”


-고려가 강했던 이유는.

“병자호란 때는 그저 산성을 지키기만 했기 때문에 산성을 피해 진군하는 청군을 막지 못했다. 서희는 거란군의 진군로에 성곽을 만들어 고려를 위한 방패를 만들었다. 더 중요한 이유는 고려는 나라를 지키는 이들에게 세금을 면제하는 등 군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중세시대 기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그들 스스로 국가의 중심축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싸웠고, 국가도 그들의 명예를 세워줬다. 현재 직업군인 지원율이 저조한데, 많은 지원을 통해 스스로 자긍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좋은 정치가 있어야만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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