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변에서 떠올린 북녘 고향[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어렸을 때부터 늘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이 바다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성장하면서 세계지도를 통해 바다 건너에 일본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쓰레기는 일본에서 밀려온 것이 가장 많았고, 남조선에서 온 것도 있었다. 주로 빈 페트병, 캔 등이 많았지만 가끔은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쓰레기도 있었다. 일본 슬리퍼 한 짝을 들고 ‘이런 건 왜 신고 다니지’ 궁금했던 적도 있고, 의족 하나를 들고 어떻게 발에 붙이고 다닐까 한참 상상했던 적이 있다. 파란색 일제 플라스틱 파리채를 주워 와 몇 년 잘 썼던 적도 있다.
그 동네에서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바다 건너 세상. 그곳에서 매년 꼬박꼬박 건너오는 쓰레기들을 소년은 연애편지를 바라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커갈수록 해변에 앉아 건너편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결국 피 끓는 20대에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중국과 북한에서 여섯 번이나 감옥을 옮겨 다녔어도 바깥세상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2002년 마침내 한국에 왔고, 하나원을 나와 4개월 뒤부터 기자가 돼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꿈은 늘 가슴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내 고향 건너편엔 무엇이 있을까.’
2005년에 구글어스 서비스가 시작됐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고향과 위도가 분초까지 똑같은 일본 해변을 찾는 것이었다. 찾아보니 그곳엔 검은 해변이 있었다.
어렸을 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꿈도 꾸지 못했던 그 해변에 서서 이번엔 맞은편 고향을 바라보는 것이 오랜 세월 나의 버킷리스트 1번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보름 전 드디어 그 꿈을 이뤘다. 삿포로에서 니가타까지 일본 북서부 해변 도로를 5박 6일 동안 차로 달렸다.
고향 집과 정확하게 위도가 일치하는 해변은 콩알처럼 작은 검은 몽돌이 깔린,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외진 해변이었다. 그곳에 서서 고향 하늘을 바라볼 때 만감이 교차했다.
어렸을 땐 바다 건너 일본은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꿈을 마침내 이뤘지만, 이번엔 바다 건너 고향이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어찌하여 이 바다는 이렇게도 건너기 힘든 것이 됐을까.
1300년 전 발해인들은 열악한 목선으로도 일본을 오갔는데, 지금의 북한은 그 어떤 배를 타도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발해인들이 타고 왔던 계절풍과 해류를 타고 부서진 북한 목선들만이 백골을 실은 채 일본 해안에 도착할 뿐이다. 발해 사신 양태사는 계절풍을 기다리는 반년이 너무나 길어 ‘한밤의 다듬이소리’라는 애달픈 시를 남겼는데, 니가타항에서 떠난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일본 서해에 머물렀던 엿새 동안 나는 점점 더 외부와 고립돼 가는 북한 동해의 도시와 마을들을 헤아릴 수 없이 떠올렸다. 북한 바닷가 마을 어디에선가 40년 전의 어린 나처럼, 외부 정보가 담긴 쓰레기를 들고 호기심에 반짝이는 두 눈으로 살펴보는 소년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검은 몽돌 해변에서 나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다시 저 건너에 서리라. 어쩌다 보니 나는 또 바다를 건너는 것이 목표인 인생을 살게 됐다. 그것은 바다 건너 북한 인민들의 꿈이기도 할 것이다. 같은 땅에서 태어난 우리가 같은 꿈을 꾸다가 문득 그 꿈이 이뤄지는 날이 온다면, 나는 고향에 누구보다 먼저 찾아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저 바다 건너편엔 풍차가 가득한 아름다운 해변이 있더구나. 나는 평생을 바쳐 다녀왔지만, 이제 너희들은 배를 타고 한나절 만에 갔다 오거라.”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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