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연구팀 참가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챌린지’ 누가 웃었나

이재덕 기자 2023. 11. 1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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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현대자동차그룹 자율주행 챌린지에서 아이오닉 5를 개조한 자율주행차량들이 무인 레이싱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자율주행 대회 1등을 차지한 건국대팀(오른쪽)과 2등을 차지한 카이스트팀. 현대차그룹 제공
3대 자율주행차 경주는 사상 처음
커브·직선 코스 섞인 2.7㎞ 10바퀴
아이오닉 5 성능 잘 파악한 건국대
카이스트 한 바퀴 이상 따돌려 1위
레벨 4에 도달할 때까지 대회 계속

지난 10일 경기 용인의 자동차 경주장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현대자동차 전기차 ‘아이오닉 5’ 3대가 트랙 위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레이싱과 달리 운전자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알고리즘은 긴장하지 않으니까요.” 이날 레이싱 대회 해설을 맡은 이가 말했다. 주행은 차량 내 탑재된 알고리즘이 맡는다.

대회 명칭은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챌린지’. 각 대학에서 자율주행을 연구하는 석·박사 과정의 연구팀들이 현대차가 제공한 아이오닉 5를 개조해 운전자 없이 차량이 스스로 운전하는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차로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 자율주행으로 서부 오프로드를 달리는 ‘다르파 그랜드 챌린지’가 열린 바 있고, 2021년부터 자율주행차 2대가 각각의 차선에서 서로 속도를 겨루는 ‘인디 자율주행 챌린지’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트랙에서 3대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동시에 벌이는 경주는 처음 있는 일이다. 직전 대회인 2년 전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챌린지는 트랙이 아닌 도심 주행 기술을 겨루는 대회였다.

전날 단독 주행으로 진행된 예선에서 랩타임 1분44초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건국대 ‘오토KU’팀의 자율주행차가 이날 출발선 제일 앞에 섰다. 그 뒤로 카이스트 ‘유레카’와 인하대 ‘AIM’이 자리 잡았다. 카이스트팀은 직전 대회 도심 자율주행 1위팀인 데다, 인디 자율주행 챌린지 본선 진출 경험이 있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인하대팀도 앞서 현대차그룹이 진행한 자율주행 버추얼 대회에서 3위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이들 포함해 총 16팀이 지원했지만, 나머지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레이싱 규칙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자율주행차량은 커브 구간 10곳, 직선 구간 3곳 등으로 이뤄진 2.7㎞ 트랙을 총 10번 돌아야 한다. 1랩은 시속 30㎞ 이내, 2~4랩은 시속 100㎞ 이내로 달려야 한다. 5랩부터는 속도 제한이 풀린다. 특히 상대 차량의 움직임을 고려하면서 고속으로 주행, 추월해야 하기 때문에 사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사고가 나더라도 경기는 중단되지 않고 사고 차량도 트랙에서 치우지 않는다. 장비와 관련된 제한도 있어 라이다나 카메라 등 센서를 마냥 늘릴 수도 없다. 소위 ‘장비빨’이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누가 더 알고리즘을 잘 짜는가에 승패가 달렸다.

녹색 신호가 켜지자 레이싱이 시작됐다. 선두에 있던 건국대팀 자율주행차가 2랩 직선 구간에 들어서자마자 시속 100㎞로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전기차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제로백’ 시간이 짧은 게 장점이다. 아이오닉 5의 제로백은 5.2초다.

건국대팀이 본선 날 고민했던 건 날씨였다. 일반적으로 악천후에는 전파를 쏘아 물체를 감지하는 레이더를 활용해야 하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모든 참가팀이 레이더를 장착하지 않았다. 대회 규정상 라이다·카메라·레이더 등 센서에서 수집한 날것 그대로의 ‘로 데이터’만 허용됐는데, 시판용 레이더는 로 데이터가 아닌 가공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레이저를 쏘아 물체를 감지하는 라이다나 카메라는 비나 눈이 내리는 날에는 제대로 된 성능을 내지 못한다. 이날 비가 올 것인가가 가장 큰 이슈였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인하대팀에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자율주행차량은 라이다 데이터를 활용해 주행 지역의 고정밀 지도(HD맵)를 사전 제작하고, 실제 주행 시에는 HD맵과 주행 데이터, GPS 신호 등을 매칭시켜 차량 위치를 확인한다. 하지만 이날 인하대 차량의 GPS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았다. 사전 제작한 HD맵에서도 오류가 났다.

이날 인하대팀은 완주에 의의를 두기로 하고 자율주행차 최고속도를 60㎞로 조정했다. 결국 4랩에서 건국대 차량과 카이스트 차량이 꼴찌 인하대 차량을 추월하며 차이를 한 바퀴 이상으로 벌렸다. 인하대 차량은 가드레일과 충돌하면서 주행 불가 상황이 됐다.

건국대팀은 4랩을 넘어서면서 시속 130㎞까지 속도를 올렸다. 카이스트팀은 최고 속도 100㎞를 유지했다. 관록의 카이스트는 레이더 없는 다수의 차량이 경주 중 여러 사고를 낼 것을 우려해 알고리즘상 최고 속도를 보수적으로 잡은 반면, 신예 건국대는 보다 공격적으로 전략을 짠 것이다. 다만 속도가 높다 보니 건국대팀이 커브 구간에 진입할 때는 타이어가 ‘끼익’ 하고 끌리는 소리가 반복됐다.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로 공차 중량이 상당히 크다. 커브 등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반복되면 브레이크가 버텨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나유승 건국대 팀장(스마트운행체공학과 박사과정)은 “아이오닉 5의 회생제동을 최대로 설정하고 커브에서는 이를 최대한 활용했다”며 “회생제동 상황에서 브레이크에 부담이 되지 않는 ‘최대 감속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따로 계산했다”고 말했다.

이날 우승은 건국대팀이 차지했다. 카이스트와는 거의 한 바퀴 차이가 났다. 이대규 카이스트 팀장(전기및전자공학부 박사과정)은 “건국대가 아이오닉 5의 성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알고리즘 개발에 최대한 활용한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날 자율주행의 핵심 역할을 한 건 라이다였다. 자율주행업계는 크게 라이다파와 카메라파로 나뉜다. 예컨대 ‘카메라파’ 테슬라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라이다를 거부하고 값싼 카메라와 비전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다.

현대차그룹은 파가 나뉜다. 현대차그룹은 주로 라이다를 연구해왔지만, 지난해 인수한 포티투닷은 카메라파다. 라이다 연구에 강한 건국대에서 나 팀장은 드물게 카메라파에 속한다. 반면 차량에 카메라를 5대나 장착한 카이스트의 이대규 팀장은 라이다 쪽에 손을 들어줬다.

라이다를 활용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레벨 4 로보택시를 운행하던 제너럴모터스(GM)의 크루즈는 사고로 로보택시 서비스를 중단했다. 반면 카메라를 기반으로 하는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기능은 아직까지 레벨 4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낙섭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상무는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레벨 4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도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날이 반드시 올 것으로 믿기에 오늘 같은 대회를 계속 개최해 그날을 앞당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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