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뒤로 손 올린 채 고꾸라진…73년 만에 찾은 ‘여순사건 유골’
유전자 대조로 신원 확인 예정
73년 만에 세상에 나온 유골은 당시 비극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얼굴이 바닥을 향한 채 고꾸라진 유골은 머리 뒤로 두 손을 올린 모습이었다. 옆에서는 탄피도 발견됐다. 경찰관들이 사용하던 카빈총에서 나온 것이었다. 머리 뒤로 손을 올린 그를 누군가가 처형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남 담양군 대덕면의 야산에서 ‘여수·순천 10·19사건’과 관련해 집단학살된 민간인 유골을 발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전남도는 19일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의 야산에서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를 찾기 위한 유해발굴조사가 지난 15일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2022년 1월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정부 차원의 유해 발굴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순사건은 1948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이다. 1955년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될 때까지 전남과 전북, 경남 일부 지역에서 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정부는 특별법에 따라 합동조사단을 꾸려 집단학살 추정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희생자 유해 발굴과 감식을 진행한다. 첫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지는 담양 야산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구례 지역에서 예비검속을 통해 연행된 국민보도연맹원이 집단학살된 곳이다.
여순사건 이후 당국은 구례 지역에서 좌익 세력 등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켜 관리했다. 1950년 7월14일 구례 경찰은 연행한 주민들을 화물차 2대에 싣고 광주교도소로 이송하던 중 담양군 대덕터널에서 왼쪽으로 2㎞ 떨어진 옥천나들골짜기에서 학살했다.
당시 희생된 주민들은 3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서 유해 발굴이 진행되는 것은 학살 장소가 명확하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 시신이라도 수습하려 현장을 찾았던 희생자 유족들은 심하게 부패해 신원 확인이 어려워지자 집단매장을 한 뒤 관리해왔다고 한다.
정부는 수습한 유해의 유전자를 유가족 유전자와 대조해 희생자들의 신원을 최종 확인할 방침이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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