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뇌암 ‘신경교종’, 성장하는 원리는 ‘학습과 기억’…치료 실마리 기대[신경과학 저널클럽]
암은 우리 몸의 각종 장기 등에서 자라나 생명을 위협한다. 물론 두뇌도 암에서 자유롭지 않다. ‘신경교종’은 두뇌에 생기는 대표적인 암이다.
머릿속에 생긴 암은 신경세포가 주변의 정상 세포를 유지하기 위해 분비하는 ‘뇌유래 성장인자’를 가로채 암세포 자신의 성장을 촉진한다. 또 신경세포가 분비한 신경전달물질에 몰래 반응해서 성장에 활용하기도 한다. 뇌에 생긴 암과 정상적인 두뇌 세포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치료하기가 어렵기로 악명 높은 머릿속 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법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셸 몽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주목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신경교종이 두뇌에 존재하는 물질에 단순히 반응해 자신을 활성화하는 수준을 넘어 학습과 기억에 사용하는 두뇌 원리를 모방해서 스스로 성장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신경세포 관점에서 학습과 기억을 설명하기 위한 핵심적인 원리는 ‘시냅스의 강화’이다. 서로 연관된 현상들이 뇌에서 체계적으로 연결된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현상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들이 동시에 활성화되고, 이들 신경세포 간의 시냅스가 강화된 채로 유지돼야 한다.
신경세포에서 시냅스가 강화되는 과정을 분자적인 관점에서 파악한 원리는 그간 많은 연구를 통해 자세히 밝혀져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NMDA수용체’라는 단백질을 통한 경로와 뇌유래 성장인자를 통한 경로가 잘 알려져 있다.
신경교종은 NMDA수용체는 가지고 있지 않고, 뇌유래 성장인자에 반응하는 수용체만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몽제 교수팀은 뇌유래 성장인자를 통한 시냅스 강화 원리가 신경교종에 작동하는지 살펴보았다.
관찰 결과는 흥미로웠다. 뇌유래 성장인자를 신경교종에 접촉했더니 신경전달물질에 의한 신경교종의 전기적인 활성화가 커졌다. 신경세포에서 시냅스 강화에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 여러 종류의 세포 내 단백질 변화가 신경교종에서도 일어났다. 학습과 기억의 장치를 통해 신경교종의 활성화가 강화되면, 신경교종의 성장도 빨라졌다. 신경교종이 두뇌의 작동 원리를 흉내 낸 셈이다.
몽제 교수팀은 학습과 기억의 장치가 신경교종에 필요한지 이해하기 위해 뇌유래 성장인자의 수용체를 유전자 편집을 통해 신경교종에서 제거했다. 그 결과 신경교종은 신경전달물질에 잘 반응하지도, 시냅스를 잘 만들지도 못했다. 그렇게 신경교종 성장이 억제됐다. 나아가 뇌유래 성장인자 저해제를 신경교종에 걸린 생쥐에게 주입했더니 생쥐 수명도 연장할 수 있었다.
학습과 기억은 뇌과학 분야에서 연구가 가장 많이 진행된 분야 중 하나다. 이를 바탕으로 뇌 기능을 강화하거나 치매 등 기억과 연관된 질환에 맞서려는 시도도 많지만, 애초 이 분야의 연구는 우리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순수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이제 두뇌 본연의 기능을 암세포도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알려진 만큼 학습·기억과 연관된 과학적 유산이 두뇌의 암을 치료하는 데 널리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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