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진짜 대학의 위기는 무엇인가
대학 나와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고, 대학졸업장이 예전 가치를 잃은 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다. 올해 수능 응시자 수는 50만4588명, 이 중에서 재수생은 31.7%에 달한다. 입시는 수능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대보다 높은 대’라는 의대 진학을 위해 서울대 입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그 자리부터 서열대로 줄줄이 추가합격과 편입학, 반수와 재수의 도미노가 시작된다. 이 이동의 경로는 그대로 학벌 차별, 지역 차별의 경로가 된다. ‘더 나은 곳’으로의 이동은 끝나지 않는다. 최근 10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 인구는 60만명에 달한다.
얼마 전 흥미로운 인터뷰를 보았다. 모 방송사 아나운서들에게 이전 직업을 물었는데, 신입사원인데도 은행, 회계법인, 대기업 등 전직이 다양했다. ‘경력’이 취업의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사회에 처음 나온 ‘경력 없는 사람들’은 어디서 경력을 만들어오란 말인가. 과거 ‘인턴’은 회사가 신입직원에게 업무 관련 교육과 준비를 위해 마련한 제도였는데, 지금은 개인이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경력이 됐다. 그렇게 해서 상층부 직업군에 들어간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방송사 아나운서처럼 보수 높고 안정적인 직장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해도, 이제 주요 방송사들도 정리해고에서 ‘안전한’ 직장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계급 상층부의 위기에 국한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상위권 대학졸업장도 과거만 못하다는 푸념은 그 학벌을 차지하던 계급의 위기감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 문제가 사회적 담론장에 등장한 것도 중간계급 자녀들의 취업위기, 진로위기가 도래하고 계급재생산이 불투명해졌을 때다. 괜찮은 일자리들은 그보다 훨씬 전에 아래에서부터 사라졌지만, 청년 취업난과 실업 문제가 대두된 것은 대졸자, 특히 수도권 상위권대 졸업자의 취업위기가 가시화되면서부터다. 특정 계급의 위기가 교육의 위기나 대학의 위기를 대표하게 되면 애초에 ‘증서 없는 사람들’ ‘학벌 없는 사람들’과는 무관한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지금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계급과 세대 전체를 통틀어 나타나는 압박인 것도 분명하다. 학생들이 느끼는 교육의 위기는 그렇게 공부해도 졸업하자마자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위기는 개인의 노력 문제도 아니고, 교육이 노동시장의 수요자인 기업의 요구에 맞추지 못해 발생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기업이 뽑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회적 수요에 기업이 부응하지 않는 것이다. 공부할수록 가난해진다는 것도 학생들이 직면한 대학의 위기다. 한국에서 4년제 대학을 다니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등록금과 사교육비를 합쳐 1년에 약 1000만원씩 4000만원, 주거비·식비·교통비 등 한 달 생활비 100만원만 잡아도 4년이면 4800만원이다. 교육자금으로 이만한 예비비를 준비하고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 것인가. 지금까지는 부모의 노후 자금을 끌어 쓰거나 부채로 해결해왔지만, 이제는 그것도 가능하지 않다. 학자금 대출을 못 갚는 청년은 지난 4년 동안 7배나 늘었다.
그런데도 대학 경영진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대학의 위기는 ‘재정위기’이자 ‘수익위기’이고, 학생들을 ‘입학자원’으로 부르며 등록금 인상을 주장한다. 교육부는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적 대학 통폐합과 구조조정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 추진하는 글로컬 사업은 5년간 1000억원씩, 비수도권 10개 대학을 선정해 선별 지원하는 대학지원 사업이다. 명분은 지방대를 살리겠다는 것이지만 실제 내용은 모집단위 광역화로 학과를 없애고, 산학협력을 중심으로 대학을 기업 생산의 하위체제로 만들며, 큰 대학만 살리고 나머지는 다 죽이는 ‘커지거나 꺼지거나’ 정책이다. 지난 30년간 대학을 죽여온 정책수단들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위기는 이제 아무리 ‘대학이 위기다!’라고 외쳐도 시민들이 ‘우리 모두의 위기’로 여기고 함께 싸워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대학은 없어지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언론 탄압에는 반대하지만 어용 공영방송의 호소에는 응답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학도 신자유주의 이론과 사상의 산실이었고, 전파자였다. 여기에 맞선 대학 내부로부터의 저항이 없다면 아무리 위기를 외쳐도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에게도 호소하고 싶다. 이 대학을 포기하는 것은 계속해서 대학이 자본과 권력에 부역하고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는 사상의 첨병이 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고, 대학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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