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병률 기자 2023. 11. 1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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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계와 금융계는 바짝 엎드려 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몸조심하는 게 최고라는 분위기다. 어느 정권이든 2년차 때는 가장 힘이 세기 마련이지만, 이번 정부의 ‘그립’(움켜쥐는 힘)은 유난히 더 세 보인다. 이는 검찰 출신 대통령에, 주변이 온통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때 예견된 일이었다.

오랜 기간 사정을 담당한 검찰 출신들의 리더십은 다른 조직과 다를 수밖에 없다. 잘못을 찾아내고, 이를 활용하는 데는 평생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언론에 대한 압수수색도 쉽게 이뤄지는 지금, 재계가 갖는 부담감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 금융권은 김주현 금융위원장을 머릿속에서 지운 지 오래다. 그보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더 주목한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시장은 알아서 그렇게 반응한다.

사정에 검찰 리더십만큼 적절한 리더십은 없다. 선과 악을 나누는 검찰 리더십은 직선적이다. 나쁜 놈을 칼같이 잡아내 추상같이 징계하는 데 타협은 필요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리더십이 다른 분야에도 꼭 맞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상을 착한 놈과 나쁜 놈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은 통합과 타협이 중요한 통치 리더십에는 때론 어울리지 않는다. 이번 정부에서는 ‘공정’은 있어도 ‘통합’이라는 단어는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검찰 리더십은 경제를 운용하는 데는 어울릴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소상공인의 말을 전하는 형식으로 은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화들짝 놀란 은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천억원대의 상생 방안을 내고 있다. 금리를 인하하고 연체이자를 감면하며 서민대출을 늘린다는 게 핵심이다. 예대마진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는 나쁜 놈 은행을 혼쭐낸 것은 일견 시원해 보인다. 문제는 경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금리를 내리고 대출을 늘리면 가계대출이 또다시 늘어날 우려가 있다. 지난달만 해도 금융당국은 “가계부채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사실 지난달까지 급증했던 가계대출은 지난 2월 윤 대통령의 ‘은행 돈잔치’ 발언이 기점이 됐다. 당시 은행들은 잇따라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주택담보대출 등을 확대했다. 소상공인들로서도 일단 부담을 덜게 됐으니 다행이지만, 장기적으로도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언젠가 갚아야 할 빚만 되레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인 지난 5일 저녁 깜짝 발표된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전면 금지’도 궤를 같이한다. 금융당국은 발표 전날까지 “공매도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불법 공매도 문제를 더 방치하는 것은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어렵게 해 개인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입힐 뿐 아니라 증권시장 신뢰 저하와 투자자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매도는 악이어서 처벌이 불가피했다는 것인데, 공매도를 단칼에 선과 악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주가조작 세력이 주가를 띄울 때 시장이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공매도이기 때문이다.

물가관리도 직선적이다. 정부는 품목별 물가담당관을 선정하고 배추·사과·우유·빵·라면 등 28개 품목의 가격을 책임지게 하고 있다. 물가를 올리는 기업을 ‘나쁜 놈’으로 보고 함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감시하겠다는 것인데, ‘나쁜 놈’들은 가격은 그대로 두고 개수를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제품의 질이나 서비스를 떨어뜨리는 스킴플레이션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시장에 질 나쁜 상품이 공급돼 소비자 후생이 되레 악화될 수 있다.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인다며 일회용 종이컵 사용규제를 일방 철폐한 것이나,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며 주 52시간제를 수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책 결정은 시원해 보이지만 종이빨대 생산업체 등 환경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몰리고, 노동시간 확대로 삶의 질이 악화될 수 있다.

기업과 정부, 가계가 균형을 이루며 돌아가는 경제는 선과 악 둘로 나누기 힘들다. 임금은 기업에는 비용이지만, 가계에는 소득이다. 임금을 깎으면 기업 수익은 늘지만, 가계소득은 준다. 임금을 악으로 볼 수도, 선으로 볼 수도 없는 이유다.

악을 때려잡는 정의의 사도, 검찰의 직선적 리더십은 사정에 국한되어야 한다. 검찰 리더십은 통치에는 어울리지 않고, 경제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경제는 착한 놈도, 나쁜 놈도 아니다. 이상한 놈이다.

박병률 경제부장

박병률 경제부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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