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일대기
그는 태생상 하나의 성소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이곳에 들어온 누군가가 죽음과 태양을 바로 쳐다보고 존재의 얇은 빙판을 밟게 되는, 위대한 장소는 될 수 없다는 깨달음. 그는 심하게 먼지 나고 들어가기에 너무 비좁은, 몹시 높고 붉은 쪽문을 가진 다락방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도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곳이 부서진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곳이었으면. 낡고 쓰다 버린 것이지만 먼 나라의 것이라 낯선 폐품 더미 속에서 잠시 혼이 나간 아이처럼, 도무지 쓰임을 알 수 없는 이상하고 망가진 물건들 사이에서, 또한 모든 이가 어느 다락방에 쌓인 낡은 몰락의 일종이었음이 문득 자연스러워지는 오후 한때
진은영(1970~)
그는 자신이 ‘하나의 성소’이고 싶었으나 ‘성소’는 결코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다.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 달과 태양을 동시에 바라보다가 ‘존재의 얇은 빙판’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던 곳은 ‘성소’가 아닌 ‘다락방’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영혼과 몸,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비추던 빛들이 이내 사라졌으므로. 그 빛들을 만져보지도 못하는 사이, 그의 일대기가 순식간에 저물었으므로.
낡은 다락방에는 온갖 ‘부서진 잡동사니’가 넘쳐났지만, 그것들로 그는 한때 풍요로웠을 것이다. ‘낯선 폐품 더미’나 ‘망가진 물건들’을 슬픔처럼 차곡차곡 쌓아놓은 다락방 쪽문으로 별들이 기웃거리고, 붉은 해가 기침하며 지나가고, 온갖 신들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을 것이다. 그는 몰랐다. ‘다락방’이 ‘성소’였다는 것을. 다락방이든 성소든 그것이 자신의 영혼이었다는 것을. 자신이 곧 ‘위대한 장소’였다는 것을. 모든 이의 일대기가 ‘다락방에 쌓인 낡은 몰락의 일종’이었다는 것을 아주 천천히 알게 되는 것이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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