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들뜨면, 실수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나간 적이 있었다. 대기실에서 PD는 내가 쓴 책이 오늘 주제와 일치해서 모셨다는 식으로 나를 진행자에게 통상적으로 소개했다. 보통은, 나는 부끄러워하고 진행자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는 거짓말을 하며 인사를 주고받는데 그는 “나는 모르는 책”이라면서 얼마나 팔렸는지를 노골적으로 묻는다. 별로 안 팔렸다고 하자 웃으면서 이런다. “내 책은 ○○만부 팔렸는데.”
들뜨면, 실수한다. 성과가 눈에 보이면 들뜬다. 성취가 이어지면 흥분한다. 여기에 ‘남보다’라는 변수가 개입해 사람과 사람이 위아래로 분류되면 실수한다. 오만과 거만을 ‘멋’인 줄 안다. 건방과 교만을 ‘재치’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모든 것을 수직화하는 능력주의 정신이 일상을 지배하는 한국 사회 어디서든 등장한다. 능력주의가 문제인 건, 사람 따라 차이를 둬서가 아니라 그 차이가 사람을 들뜨게 해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실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서열은 ‘공부의 결과일 뿐’이라는 납작한 해석에 갇히고 소득격차는 ‘어쩌라고’라는 한 단어로 반박된다. 이 논리, 여기저기에 흔하다. 집값이 오르면 들뜬다. ‘운’이라고 하면 될 걸 꼭 ‘열심히 살아서 보상받았다’고 말하고야 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모성이 과잉되면 힘든 육아 속에 찾아오는 순간적인 감동에 심취한다. 그러면 육아 해결 방송을 보면서 ‘부모가 저러니 저 모양이지’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운동의 기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버릇에서도 빨리 빠져나오지 못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목표가 윤리가 된 이들은 야식 한 번 참을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그러면, ‘라면값도 올랐다’면서 생활물가 걱정을 하는 사람에게 “나는 라면을 안 먹어서 잘 몰라”라는 말을 하면서도 그 어색함을 모른다. 자신의 목표가, 자신의 의지가, 자신의 생활습관이 ‘위쪽’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기괴한 반응이다.
정치권은 어떠한가. 한쪽은 민주화 경험의 들뜸을 지금도 감추지 못하고 실수한다. 한쪽은 검사 시절 칼잡이 때의 희열로 정치문제를 죄다 사법화한다. 김포시 서울 편입이라는 황당한 정책도 들뜸의 문제다. 서울중심주의는 찬반 논쟁이 아니라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거지만, ‘아래’ 김포가 ‘위’ 서울과 합쳐지면 좋은 거 아니냐는 괴상한 이유가 당당하다. 집값이 오르면 들떠서 이럴 거다. “지옥철 타고 출근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보상받아야지.”
들뜨면 돌파, 승부수 등의 말을 남발하며 흥분한다. 차분해지자. 들뜨면 열정, 열의 등의 뜨거움을 지나치게 분출한다. 차가워지자. 들뜨면 말과 행동이 정제되지 않는다. 느려지자. 삶은 오늘이 내일로 연결되는 것이지, 무슨 보상이 아니다. 그저 밝고 맑은 태도로 살아가면 된다.
들떠도 되는 건, 응원하는 야구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정도일 거다. 그것도 고함 크게 지르며 평소라면 하지 못할 행동을 잠시 하면 될 일이다. 어디는 24년 전에 우승했대, 어디는 31년 전이라는데 말이 되냐면서 빈정거릴 필요 없다. 다 사정이 있을 거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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