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강보험공단은 공공기관으로서 품위를 보여라
지금 강원 원주시 건강보험공단 본사 앞에서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단식을 하고 있다. 공단 건물은 경찰차들이 틈 없이 둘러싸고 있어 공단이 스스로를 차벽으로 가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인가.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찬 바람보다 공단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이처럼 완강하게 교섭을 거부하는 데서 오는 차가움에 더 몸서리치는 것 같다.
2년 전 시민사회는 공단에 고객센터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건강보험에 대해 질문하거나 처리할 일이 생기면 가입자들은 고객센터에 전화한다. 그런데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더 많은 콜을 받도록 내몰려 친절한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내 건강이나 재산 정보를 모두 들여다보며 응대하는 노동자들이 용역업체 소속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개인정보 관리와 제대로 된 상담을 위해 고객센터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노사가 소속 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에 합의했기에 단체들도 동의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도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용역으로 일한다.
공단은 2년 동안 시간을 끌다가 올해 10월 노·사·전문가 협의체에서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소속 기관으로 전환하되, 지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입사 연도로 나누어서 일부는 시험을 거치고, 일부는 새로 이력서를 내라고 하는 안이다. 상담사들의 자격을 검증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혹시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건강보험 상담을 맡기고 있었다는 말인가. 건강보험 상담을 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노력해가며 지금까지 상담을 해왔다. ‘앞으로 좋은 일자리가 될 테니 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는 말은 지금까지 나쁜 노동조건을 견디며 묵묵히 그 일을 해왔던 노동자들에 대한 무례다.
공단은 고객센터지부와의 교섭을 해태하고 있다. 소속 기관 노동자로 전환되는 이들의 노동조건이나 방식에 대해 노동자와 논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이미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노조법은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보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공단이 본사 앞에서 농성하는 이들을 주거침입과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본사에서 집회하고 농성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다. 이미 한국수자원공사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사건에서 대법원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건물에서 집회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판결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것은 모든 상담원이 소속 기관 노동자가 돼야 한다며 싸우는 노동자들에 대한 협박인 셈이다.
고객센터를 소속 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은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한 약속이다. 공공기관의 약속이 이렇게 가벼워서는 안 된다. 건강보험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상담사들이 공공기관 소속이어야 하는 것은 건강보험 공공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비정규직의 ‘노조 할 권리’를 존중하고,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는 일도 당연한 것이다. 공단이 공공기관으로서의 품위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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