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11월
시인 황지우는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11월의 나무)고 노래한다. 11월은 봄부터 가을까지 단숨에 달려온 시간을 돌아보다가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며 한숨짓게 만든다. 잎사귀를 다 떨구고 잔가지만 휑한 나무처럼 생이 난감해진다. 이런 계절에 배경음악처럼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그룹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우리네 ‘생의 가려움’을 달래준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쓱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내게 긴 여운을 남겨줘요/ 사랑을, 사랑을 해줘요/ 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새하얀 빛으로 그댈 비춰줄게요.”
1992년 원숭이띠들로 결성됐지만 내세우는 정서는 마치 1970년대 산울림의 그것을 차용한 느낌이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산울림 앨범을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장면을 삽입하는 등 선배 그룹에 대한 오마주를 숨기지 않는다. 최정훈이 쓴 노랫말들은 그의 감성 돋는 보컬과 함께 열성 팬들을 불러모으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이 곡을 써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줬을 때 너무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다가 사랑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흡인력 있는 제목을 붙일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2019년 발매된 2집 앨범 <전설>(사진)에 수록되면서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곡이 됐다.
다소 다른 분위기의 노래지만 그룹 넥스트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에서 작사가인 신해철은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선택은 항상 너야/ 힘겨운 시간은 왠지 천천히 흘러/ 하지만 우린 함께야”라고 노래한다.
이 소멸의 계절에 우리가 기댈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주저하거나 힘겨워하지 말고, 고백하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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