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기부금에 담긴 따뜻한 사연들
환갑을 갓 넘은 중년 남성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순간 놀랐다. 그가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대화를 잠시 멈추고 기다렸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는 자리에 성인 남성 둘이 앉아 있으니 뭔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띵동 기부자로서 단체 활동이 궁금해 찾아온 귀한 손님이었기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액의 기부금을 매월 내는 그가 어떤 계기로 띵동을 후원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잠시 망설이더니, 3년 전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라기도 했지만, 섣부른 위로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들의 숨겨진 세계를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가 기부에 참여함으로써 아들이 겪었을 삶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듯 보였다. 아들이 태어난 날짜가 적힌 팔찌를 자랑하듯 보여주었지만, 불과 3년도 채 되지 않은 슬픔과 그리움을 다 꺼내놓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더 놀라웠던 것은 아들 이름으로 장학금을 매년 조성해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 성소수자의 모습이 희망과 함께 떠올랐다.
오래전부터 비영리단체에서 인권 관련 모금을 기획하고, 제안하고, 기금을 조성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기부 참여가 곧 사회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연대라고 믿기에, 기부를 제안하는 일은 곧 낯선 누군가에게 함께 희망을 만들고 위기를 넘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도 여러 차례 긴급모금 안건을 제안하고 참여를 독려했다. 트랜스젠더 난민 티아라가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제3국으로 이동해야 할 때 발생하는 항공비와 생활비를 모았다. 가족이 시신 인도를 포기한 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의 장례 비용을 마련하고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의 긴급 생필품 지원 기금을 모금하기도 하였다. 한 단체가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비용을 십시일반 나누기 위해 제안한 모금에 많은 이가 응답해주었다. 기꺼이 지갑을 열어 연대의 마음을 표해준 분들이 있어 모두 목표금액을 채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티아라는 본국으로 돌아가 안전한 쉼터에 머물며 제3국으로 출국할 준비를 하고 있다. HIV 감염인의 장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약 150명의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를 도울 수 있는 긴급 지원비도 마련되었다.
내년에는 어떤 따뜻한 바람이 불까. 동성애자 아들을 몹시 그리워하는 한 아버지가 조성한 장학금으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배움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처음으로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커진다. 가까운 사람들이 힘들지 않은지 잘 살펴봐달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에 추운 겨울이 와도 든든할 것만 같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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