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못난 왕의 의심이 만들어낸 ‘손돌바람’
22일은 그해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다. 하루가 다르게 날이 추워져 겨울 채비를 서두를 때다.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속담이 있다. 특히 이즈음에는 바람이 심하게 분다. 일명 ‘손돌바람’이다. 손돌바람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몇가지 설이 전한다.
조선시대 때 이괄의 난을 피해 한강을 건너던 인조와 관련한 얘기도 그중 하나다. ‘손돌(孫乭)’이라는 사공이 있었다. 그가 피란을 가는 왕을 모시고 뱃길을 가는데, 왕의 눈에는 손돌이 일부러 물살이 거센 곳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인조가 물살이 잔잔한 곳으로 뱃길을 잡으라 했지만, 손돌은 계속 물살이 거친 곳으로 노를 저었다. 이에 인조는 자신을 해하려는 것으로 의심했다. 손돌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인조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죽음을 직감한 손돌은 바가지를 하나 건네며 “뱃길을 못 잡겠으면 물에 바가지를 띄우고 그것을 쫓아가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물살은 더욱 거세졌고, 인조와 신하들은 어쩔 수 없이 손돌의 얘기대로 바가지를 물에 띄웠다. 그러자 바가지는 여전히 거센 물살을 따라 흘러갔고, 인조 일행은 그 뒤를 따라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 얘기는 고려 23대 고종이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몽진을 가던 때라고 시대와 등장인물이 바뀌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못난 왕이 의심하고 고집을 부리면 백성만 험한 꼴 당하는가 보다. ‘손돌(孫乭)바람’은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어 이런 유래의 설득력을 더한다.
손돌의 ‘乭’은 ‘이름 돌’ 자로 옛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갑돌이’가 이 ‘乭’ 자를 쓰고,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결로 유명한 바둑기사 이세돌도 ‘乭’을 쓴다. ‘乭’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한때 이세돌(李世乭)을 ‘李世石(이세석)’으로 표기했다. 하지만 이세돌이 워낙 유명한 까닭에 지금은 ‘乭’ 자를 만들어 쓴다. 이렇듯 없는 글자를 만들기 위해 둘 이상의 다른 활자에서 일부분씩 따서 한 글자를 이뤄 쓰는 활자를 ‘쪽자’라 한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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