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정권의 위기
[세계의 창]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최근 2~3개월간 나온 신문·방송사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이달 조사에선 모든 언론사에서 지지율이 20%대를 기록했다. 기시다 총리는 국정 쇄신을 위해 9월 개각을 단행했으나 차관급 인사들이 선거법 위반, 세금 체납 등 불미스러운 일로 잇따라 사퇴했다.
기시다 총리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인사 참사 때문만은 아니다. 정책적 측면에서도 신뢰나 기대감이 없다는 것이 큰 원인이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에선 물가 상승이 근심거리다. 임금 인상이 더디기 때문에 실질 임금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엔화 약세로 수출기업의 수익이 늘어나자, 대기업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 사이에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 20~30대 젊은층에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극히 낮은 것은 이런 현실에 대한 불만이다.
일본인이 직면하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고물가가 아니라 국가의 쇠퇴라는 역사적인 난제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독일에 추월당해 세계 4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출생아 수는 80만명을 훨씬 밑돌아 전후 최소를 기록할 것이 확실하다. 고물가는 중요한 현안이지만 감세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현재 기시다 내각의 곤경은 장기 집권 후에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는 과거 패턴과 닮았다. 1980년대 후반 나카소네 야스히로(1918~2019) 내각과 2000년대 후반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후 자민당 정권이 계속되긴 했지만, 총리의 단명이 이어졌다. 2012년 말부터 8년 동안 집권한 아베 신조(1954~2022) 총리가 퇴임한 뒤, 두번째로 총리에 오른 기시다 내각은 위기에 놓였다.
장기 집권에 이은 총리의 단명으로 정치가 불안정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기 집권은 총리가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정권이 길어지면 부패도 생기고, 새로운 과제에 대한 정책 변화가 필요해 전임자를 계승하는 것만으로는 다음 총리가 성공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의 장기화는 ‘아베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의 성과 덕분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금융완화로 엔화 약세를 만들어 일시적으로 수출기업을 살린 단기 부양책에 불과했다. 지난 10년 일본엔 새로운 산업이 자라지 못하고, 재정적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만들어낸 왜곡이 지금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하고 아베노믹스로부터 전환을 시도하며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없었다. 물가가 상승하는데도 일본은행은 금융완화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이 인플레이션인지 디플레이션인지 모르는 것 같다.
오히려 아베 전 총리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을 실현하면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고 있다. 방위비 증액, 원전 재가동, 헌법 개정 추진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아베 정권의 결점을 극복할 수 없으면 기시다 내각도 단명할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민 상당수가 기시다 내각을 포기하고 있는데도 정권 교체의 기운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보수당인 리시 수낵 정권의 지지도가 하락하는 등 내년 총선에서 노동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것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일본에서도 2000년대 후반 ‘포스트 고이즈미’ 시기에는 민주당이 최대 야당으로 존재감을 갖고 있어, 정권 교체의 선택지가 될 수 있었다.
현재 야당은 분열돼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정치적 불만은 결국 자민당 내에서 총리가 바뀌는 것으로 흡수된다. 이런 방식으론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진정한 정책 쇄신을 위해서는 낡은 정치를 부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당이 정권 교체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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