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재의 파도를 넘어] 21대 국회, 파도가 지나간 자리
[오동재의 파도를 넘어]
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파도가 칠 때 바다 위에 떠 있는 것들도 앞으로 이동한다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바다에 떠 있는 것들은 파도에 따라서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움직일 뿐,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높고 강한 파도가 오더라도, 파도가 지나간 후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비단 자연 현상에만 국한되진 않는 듯하다. 우리 삶이나 심지어는 정치도 일면은 파도 위를 유영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잔잔하다가도 중요한 순간들이 파도처럼 오면 높이 떠오르고 요동치지만, 지나가면 그만일 뿐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파도가 지나기 전과 다르지 않다.
2020년 6월 문을 연 21대 국회가 저물어간다. 마지막 국정감사는 지난달 끝마쳤고, 내년도 정부 예산안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21대 국회가 할 일은 대부분 끝이 난다.
21대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하나의 파도였다. 지난 4년 여러 의제가 떠올랐고, 기후위기 대응도 그중 하나였다. 코로나와 함께 환경 문제가 대두했던 2020년 초, 주요 정당들은 속속 기후 관련 공약들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그린뉴딜을 주요 공약으로 발표했고, 180석을 확보하며 거대 여당이 되었다. 기후/환경 관련 이력들을 주요 배경으로 가진 각 정당의 후보들도 비례와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기대를 모았다.
그렇게 출범한 21대 국회는 출범 직후인 9월 98%(찬성 252인)라는 압도적인 가결률로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정부에 단기(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과 함께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이는 1년 뒤 탄소중립기본법 통과로 이어졌다.
석탄과 같은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에 대한 문제 제기도 활발했다. 여당 의원들 중심으로 지적됐던 정부의 해외 석탄 금융 제공 관행은 2020년 ‘해외석탄투자 금지 입법’ 시도로도 이어졌다.
작지만은 않은 그 파도가 도달한 한국 사회 지형은 이전과 달라졌다. 석탄 발전과 온실가스 배출의 종결 시점이 2050년으로 확정되었고 신규 해외 석탄 발전에 대한 금융지원도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파도는 국회를 금방 지나쳐서 갔고 많은 것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어떤 것들은 뒤로 가기도 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면서도 선거철이 되면 신공항 추진에 앞장섰다. 2021년, 온실가스 배출과 경제성 우려에도 불구하고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특별법이 통과됐다. 결국 신공항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도 면제됐다.
화석연료가 기후위기를 불러온다면서도 오히려 화석연료 산업의 생명줄을 늘렸다. ‘청정 수소’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수소법을 개정했지만, 결국 재생에너지가 아닌 화석연료 기반 수소인 ‘블루수소’도 청정 수소로 인정받는 것을 목전에 두고 있다.
기후위기만을 다루기 위한 국회 내 공론장도 만들어졌지만 유명무실했다.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 통과 이후 범부처 기후 의제를 다루기 위해 기후위기 특별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입법 심사 권한도 부여받지 못한 체 4차례의 회의를 끝으로 종료를 앞두고 있다.
그간 기후위기 문제는 심각해지면 심각해졌지, 해결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단기 온실가스 감축 경로와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후퇴는 과학자들이 되풀이하고 있는 감축 경로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해외 화석연료 사업 금융은 일본과 함께 가장 많지만, 해외 재생에너지 사업 금융은 전 세계 꼴찌 수준이다.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뒤로하고 이제 22대 국회라는 새 파도를 기다릴 차례다. 새 국회가 만들 파도는 얼마나 강하게 오랫동안 지속되며 지형을 바꿔낼 수 있을까. 답은 유권자인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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