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청년비하’ 현수막
2003년 4월, 보궐선거에 당선된 유시민 의원(당시 43세)이 ‘노타이에 백바지’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나타나 의원 선서를 하려 했다. 국회는 권위를 내세우며 제지했지만 젊은 세대는 환호했다. 다음해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386출신 정치인이 대거 당선됐다. 유 의원을 비롯한 ‘청년’ 정치인들의 등장으로 여의도 정치문화도 조금이나마 개선됐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사라진 것을 꼽을 수 있다.
2021년 6월, 30대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몰고 국회에 출근했다. 국민의힘의 ‘청년 태풍’은 다음해 5월 대선으로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뒤늦게 박지현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내세워 맞대결을 펼쳤지만 석패했다. 대선이 끝나자 두 청년 정치인은 ‘토사구팽’ 당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2030정치’가 전면에 등장할 조짐이다.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을 준비하겠다며 ‘온라인 지지자 연락망’이라는 2030식 정당 창당 방식을 내세웠는데, 첫날 2만7000명이 신청할 정도로 호응도가 높았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카드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유가 어떠하건 ‘어린 X’이라는 야당의 비난을 받기도 했으니 50세라는 나이보다는 ‘젊은 감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백바지’와 ‘따릉이’로 대표되는 청년 정치인 콘셉트에 ‘한동훈 패션’이 포함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민주당은 86세대들이 오랜 기간 헤게모니를 쥐어온 탓인지 몰라도 ‘젊은 감각’이 부족해 보인다. 총선을 앞두고 조바심이 생겼는지, 시도당으로 보내는 공문에 청년 유권자를 겨냥한 현수막 디자인을 공개했는데 청년비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청년 세대를 정치와 경제에 무지하고 개인의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당내에서조차 쏟아졌다. 86세대 중심인 당이 공약 소구층인 청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태의 배경 아닐까.
청년 정치인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청년 표는 얻고 싶어 하는 정치권의 ‘청년팔이’ 선거는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됐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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