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관찰에서 삶의 비밀을 알게 하는 ‘커다란 집에서’[천지수가 읽은 그림책]
intro
그림책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를 아늑한 기분에 빠지곤 한다.
가장 소중한 존재가 돼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랄까. 온 우주가 나를 향해 미소 지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휙~ 하고 나를 그 시간으로 보내주는, 그림책은 폭신하고 따뜻한 타임머신이다.
화가 천지수가 읽은 열 한번째 그림책은 ‘커다란 집에서’(김선남 그림책 / 봄봄)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흑백의 향연으로 자연을 이야기할 수 있다니!’
김선남의 그림책 ‘커다란 집에서’의 그림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흑백의 모노톤(monotone)이 주조를 이루는 그림들이지만, 총천연색의 자연이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다양한 명도와 다채로운 표현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꿈을 그리듯 몽환적인 화면과 이야기가 너무나 아름다워 마음이 설렌다. 나는 그림책 속에 온전히 빠지고 싶어서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한 후 영화를 보듯이 감상하기 시작했다.
자연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눈에 띈 ‘커다란 집에서’의 주인공은 아기 벌레다. 아기 벌레는 커다란 집에서 아무도 없는 방을 찾아가는 여정을 한다. 아기 벌레에게 온 세상인 커다란 집은 어디일까? 이리저리 꼬물거리며 가는 방마다 만나는 다른 곤충 중에는 친절한 친구도 있고, 아기 벌레의 먹이도 있으며, 천적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도 같아서, 나는 아기 벌레와 일체감이 느껴진다.
아기 벌레가 다니는 겹쳐진 공간들은 주로 연필의 모노톤으로 표현됐는데, 기법이 풍부하고 다양하게 묘사돼 있다. 연필은 아주 매력적인 미술도구다. 연필심의 흑연은 단순한 검은색으로만 감지되지만, 어떤 각도와 힘으로 조절해서 쓰느냐에 따라 이 그림책처럼 깊고 풍부한 느낌의 우주를 표현할 수도 있다.
무채색의 세상 위에 기어가는 초록빛 아기 벌레의 모습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다.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인간처럼 보인다. 더욱 새로워지기 위해 자기만의 공간을 찾는 한 인간. 드디어 아무도 없는 방을 찾은 아기 벌레는 깊은 잠에 빠진다. 아기 벌레에게 잠은 무엇일까? 멈춤일까? 주변에 모든 곤충들이 다가오고,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영원 같은 잠에 빠진 아기 벌레는 단단한 고치 속에서 묵묵히 성장하고 또 성장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모두를 놀라게 할 기적을 만든다. 아기 벌레와 만났던 달팽이 아줌마가 나비를 보며 묻는다.
“하얀 나비야, 안녕? 혹시 아기 벌레 못 봤니?”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커다랗고 하얀 날개를 황홀하게 펄럭이는 나비가 드넓은 배추밭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작은 꿈틀거림으로 배춧잎 사이사이를 기어다니던 아기 벌레는 주변의 어떤 곤충들도 못 알아볼 만큼 멋진 변신을 하고 이제는 배추가 아닌 꽃 위에 앉아 있다.
나는 그림책을 읽는 내내 아기 벌레가 나비가 될 때까지의 모든 여정들이 인간의 삶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아기 벌레라면 나는 지금 어떤 과정에 있을까? 아기 벌레에서 고치, 그리고 나비가 되기까지 소중하지 않은 과정이 없다. 그 어떤 시간도 거쳐가지 않으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림책 ‘커다란 집에서’는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고 따뜻한 정서를 가진 작가가 자연을 통해 삶의 비밀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참 고마운 책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아기 벌레의 삶이 인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그 어떤 순간이라도 기적처럼 행복해진다. 그것을 느끼는 지금 나는 나비가 돼 날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천지수(화가·그림책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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