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당한 학교, ‘죽음의 지대’ 된 병원…남쪽도 진격하겠다는 이스라엘

김서영 기자 2023. 11. 19. 16: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유엔이 운영하는 알파쿠라 학교가 18일(현지시간) 공습을 받았다. 알자지라방송 갈무리

유엔이 대피로소 지정한 학교마저 폭격당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병원은 ‘죽음의 지대’가 됐고, 팔다리가 절단된 환자들까지 걸어서 피란길에 올라야 했다. 가자지구 북부를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초토화시킨 이스라엘군은 이제 남부 지상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밀려드는 피란민과 남부까지 이어지는 공습 속에서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남부 지역마저 한계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학교 폭격, 수백명 사상…중환자도 걸어서 피란

18일(현지시간) AP통신·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날 가자지구 북부 자빌리야 난민촌에서 유엔이 대피소로 운영하는 알파쿠라 학교와 탈 알자타르에 있는 또 다른 학교가 공습을 받아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두 학교에는 각각 피란민 수천명이 대피중이었던 만큼 사상자 규모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한 목격자는 “끔찍하다. 땅에 아동과 여성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고 AP에 전했다. 알자지라가 확보한 영상에는 여성과 아동이 다수 포함된 시신들이 보였으며, 뜯어진 벽과 지붕의 잔해가 흩뿌려져 있었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는 이번 공습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밝혔으나, 이집트와 카타르는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하마스 또한 알파쿠라 학교 공습을 두고 “아동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알파쿠라 학교가 표적이 된 건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두번째다. 알자지라는 “알파쿠라 학교는 알시파 병원과 마찬가지로 표적이 됐다. 피란민이 이렇게 밀집한 학교를 공격하는 건 하마스 전사를 추적한다는 것 이상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쫓겨나고 죽기를 원한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알시파 병원이 운영을 중단한 이후 인도네시아 병원으로 모여들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한차례 휩쓸고 간 알시파 병원은 의료시설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수백명의 환자와 의료진, 난민들이 이스라엘군의 소개 명령에 따라 18일 병원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다. 이들은 이스라엘 저격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흰 천을 흔들면서 지나가야 했다. AFP는 “신체 일부가 절단된 환자들이 구급차도 없이 걸어서 해안가로 향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병원장에게서 ‘떠나려는 사람들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이 소개령을 내리고 사람들을 내보내는 데 한시간을 줬다”고 반박했다.

복수의 의료진 역시 “총구를 겨눠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으며, 알시파 병원을 떠난 한 주민도 “이스라엘군이 중환자실을 폭격했고 아래층도 터뜨리겠다고 위협해 우리는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CNN에 밝혔다.

현재 병원 내에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골절 및 절단 환자 등 260여명의 환자와 의료진 25명이 여전히 남아 있다. 미숙아 31명은 남부지역 병원으로 이송되기 시작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일부는 이집트 라파로 옮겨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날 알시파 병원을 방문한 세계보건기구(WHO) 인도적상황 평가팀은 “병원이 죽음의 지대가 됐다. 절망적 상황”이라면서 “남아있는 환자와 직원들의 즉각적 대피를 위한 계획을 긴급히 수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WHO는 “병원 입구에 80여명 이상이 매장된 대규모 무덤을 목격했다”면서 “복도와 병원 부지가 의료 폐기물 등으로 가득 차 있어 감염 위험이 높다. 의료 서비스 중단으로 인해 지난 2~3일 동안 여러 환자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18일(현지시간) 살라 알딘 도로를 따라 가자지구 북부에서 남부로 대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초토화된 북부, 남부 공격 시 더 큰 재앙 우려

가자지구 북부 장악을 완료했다고 판단하는 이스라엘군은 곧 지상전을 남부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대원들이 근거지를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했다고 보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지상전 두번째 단계로 접어들었다. 매일매일 하마스의 작전 지역은 줄어들고 있으며 남부의 테러리스트들도 이를 조만간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가자지구 북부에서의 성과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남부로 작전을 확대하는 것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 전사들이 남쪽으로 향하면서 다른 인구 속으로 섞이게 된다면 이들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휴전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이스라엘이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하마스 대원들이 이미 근거지를 남부로 옮겼다면, 애초에 알시파 병원이 습격을 감행할만큼 중요한 군사목표였던 것은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까지 제기된다.

이스라엘군의 남부 진입은 더 큰 민간인 인명피해를 수반할 전망이다. 이스라엘군은 지상전 개시 직후 “남쪽으로 대피하지 않는 자는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하며 북부 지역 주민들을 남부로 밀어넣었다. 이 때문에 현재 가자지구 전체 인구 230만명 중 160만명이 난민이 된 상태이며, 이들 대부분이 남부 지역에 몰려있다. 남부 최대 의료시설인 칸유니스 병원 관계자는 뉴욕타임스(NYT)에 “북쪽에서 흘러온 환자들이 붐비는 복도에서 자고 있다. 연료가 고갈돼 병원 시스템이 붕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남부 지역에서 군사작전이 시작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인명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안보회의 전 의장인 기오라 에일란드는 “아마도 민간인 사상자가 더 많아지겠지만, 이것이 우리를 단념시키거나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18일(현지시간) 가자지구의 파손된 건물에 이스라엘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가자지구 북부를 거의 장악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한 지상 작전을 조만간 남부로 확대할 전망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지난주 크후자, 아바산 등 남부지역 소도시 4곳에 대피 전단을 살포했다. 가자시티를 탈출한 한 주민은 “남쪽으로 가라고 해서 왔는데, 이제 또 떠나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 17일 기준 누적 사망자가 1만200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아동 5000여명과 여성 3300여명을 포함한다. 부상자는 3만명이 넘는다. 아동 1800명을 비롯한 약 3750명은 행방불명이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