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킬러’ 없는 수능 가능했다지만···‘사교육’ 줄인 수능은 안갯속
지난 16일 실시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초고난도(킬러) 문항’ 없이 변별력 있게 출제됐다는 게 출제 당국과 EBS 현장교사단의 평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올해 수능이 ‘불수능’ 수준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킬러문항이 배제된다고 사교육이 경감될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많다.
정문성 수능 출제위원장(경인교대 교수)은 지난 16일 수능 출제방향 관련 브리핑에서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문항’을 배제했으며,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출제했다”고 말했다. EBS 현장교사단도 매 과목 시험 후 브리핑마다 지나친 사교육을 유발하는 킬러문항은 출제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평가 덕분에 교육계 일부에서는 사교육의 영향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수능의 변화가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을 양산할 뿐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킬러문항 없는 수능’은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문항을 사교육 유발 요인으로 지목하면서 등장했다.
실제 학생들 입장에서는 킬러문항이 없어도 문제가 어려울 경우 학원에서 발을 떼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각에서 킬러문항 논란이 일고 있는 수학영역 22번은 19일 EBSi 등에 따르면 가채점 결과 정답률이 1.5%에 불과했다. 해당 문항은 교육과정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문제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계산이 오래 걸린다는 점에서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제 당국이 킬러문항이 아니라고 판단하더라도 이처럼 정답률이 매우 낮은 문제가 나온다면 학생들은 계속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수험생 커뮤니티들에서는 “이전까지 사교육, 공교육에서 보지 못했던 문제가 나왔다”, “기존의 기출만 공부해서는 고득점은 어려울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애초에 정부가 내세운 킬러문항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수험생들은 기존 출제 기조와 달라진 수능에 대비하고 새로운 학습법을 터득하고자 학원에 다니게 된다. 한 입시전문가는 “출제 당국에서는 변별력 있게 출제됐으니 문제가 없을지라도 수험생 입장에서는 앞으로 어디에 의존해야 하나 난감할 수 있다”며 “수능에서는 사소한 변화조차도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불수능으로 인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은 수험생들은 재수, 반수 등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절대평가로 실시된 영어영역의 경우 1등급 비율이 4.37%였던 지난 9월 모의평가보다 어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경우 상대평가 1등급 비율(4.0%)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 돼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학생들이 늘어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수능을 다시 치르기 위해 재수종합반이나 기숙학원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많은데, 한 달에 대략 2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국장은 “킬러문항을 핀셋제거한다고 해서 사교육 환경이 많이 달라지겠냐”며 “수능의 영향력을 완화하고 대학 서열 문제를 해소하는 등 종합적인 접근은 남겨두고 킬러문항과 사교육을 연결하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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