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남북 ‘스페이스 레이스’… 승자는? [문지방]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남북이 우주에서 맞붙습니다. 과학기술의 결정체로 불리는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 경쟁이 치열합니다. 북한은 앞서 두 차례 실패하면서 체면을 구겼던, 이른바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를 공언한 상태입니다. 우리 군 당국도 이달 말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합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인공위성과 달 착륙을 두고 경쟁했던 ‘스페이스 레이스’가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셈입니다. 어느 한쪽만 성공한다면 실패한 쪽은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지도 모릅니다. 남북이 과학기술력의 자존심을 놓고 총성 없는 한판 격돌을 앞두고 있습니다.
두 번 실패한 북한... '삼세번' 성공할까
북한은 지난 5월 31일과 8월 24일 이른바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같지 않았죠. 평안북도 동창리 위성발사장에서 쏘아 올린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와 이를 탑재한 ‘천리마 1형’ 로켓은 서해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우리 정보당국은 1차 발사와 2차 발사 모두 2단 비행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2차 발사 실패 직후 곧바로 3차 발사를 예고했습니다. 10월 중에 위성을 다시 쏘아 올리겠다고 공언했죠. 하지만 엄포와 달리 실행은 없었습니다. 대신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공위성 개발에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냈죠.
북한의 위성 발사가 지연되는 것은 러시아의 기술 협력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북한의 위성 발사를 두고 “11월 말 정도에는 할 가능성은 있지 않겠느냐”며 “아마 러시아에서 구체적 기술 지도가 와서 시간이 지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한, 425사업 첫 위성 이달 말 우주로
우리 군은 이달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밴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미국 ‘스페이스X’사의 ‘팰컨9’ 발사체를 사용합니다. 신 장관은 지난 3일 간담회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습니다. 통상 극비리에 진행되는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공개한 것은 성공한다는 자신감이 충분해서라는 해석입니다.
우리 군은 2018년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425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북한 주요 전략표적에 대한 감시·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찰위성 5기를 확보하는 사업입니다. 국방부는 오는 2025년까지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 4기와 전자광학(EO)·적외선(IR) 장비 탑재 위성 1기를 우주에 띄울 예정입니다. 이달 말 발사하는 위성은 이중 EO·IR 위성입니다. 2호기는 내년 상반기 발사가 유력합니다.
군은 425사업에 더해 초소형 군사위성 여러 대 추가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425사업 위성이 한반도 상공을 살필 수는 있지만, 위성체 통과와 통과 사이 공백 시간을 메울 목적입니다. 오는 2030년까지 초소형 위성체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한 위성 성능 압도적... 북한, 군사적 목적 사용에는 '글쎄'
남북의 군사정찰위성의 성능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425사업을 통해 발사되는 우리 위성의 해상도는 0.3~0.5m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로 세로 30㎝ 크기 물체가 점(pixel) 하나로 찍힐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서브 미터(sub meter)’급입니다. 우리가 현재 운용하고 있는 아리랑위성 3A호는 55cm급, 차세대중형위성 1호는 50cm급 해상도입니다.
북한이 쏘아 올릴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는 어떨까요. 한미 전문가가 지난 5월 31일 첫 발사 당시 서해에 추락했던 만리경 1호의 주요 부분을 인양해 분석한 결과 북한 군사정찰위성은 이보다 훨씬 떨어지는 성능을 가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정찰위성으로서의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위성체에 달린 카메라 등 광학 장비나 부품, 광학 카메라가 들어간 경통 등을 살펴봤는데 이렇다 할 기술적 의미를 찾지 못한 셈이죠.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1차 발사를 했던 5월 31일 국회 정보위원회 현안보고에서 "길이 1.3m, 무게 300㎏급으로 해상도가 최대 1m 내외인 초보적 정찰 임무 정도만 가능한 소형 저궤도 지구관측 위성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군은 만리경 1호가 북한이 지난해 12월 발사한 해상도 20m 수준의 위성 시험품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성 시험품이 만리경-1호의 프로토타입으로 보이는 만큼, 6개월 사이 뚜렷한 기술적 진보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북한이 공개한 서울 시내 위성사진은 일반적 상업용 위성 성능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남북 불신 속 서로 감시해야 하는 아픔
그렇다면 왜 남북은 우주로 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일까요. 이는 한반도의 아픔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전' 국가라는 점이죠.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는 이상, 또 북한이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탄도미사일로 남한을 위협하고, 남한 역시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신은 서로를 감시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합니다. 남한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위해 사전 징후 포착과 선제 대응을 포함하는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KAMD), 대량응징보복(KMPR) 등 ‘한국형 3축체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거망동이 예상될 때 미사일 발사 전에 무력화하는 이른바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 개념도 구체화 중입니다. 북한은 비대칭 전력에서 우리에 비해 앞서 있지만 재래식 무기 및 해·공군 영역에서는 우리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북한 역시 우리 군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위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미소 '스페이스 레이스'와 꼭 닮은... 선의의 우주 경쟁 되길
20세기 중·후반, 미국과 소련은 우주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이른바 ‘스페이스 레이스’에 돌입했습니다. 1953년 소련이 미국 등 서방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면서 촉발된 스페이스 레이스는 소련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는 데 성공하고 미국이 뱅가드 로켓 발사에 실패하면서 소련의 기선제압으로 전개됐습니다. 최초의 포유류 우주 진출도 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 2호에 실린 강아지 라이카였습니다. 유인 우주 비행 역시 소련이 진행한 보스토크 계획에서 유리 가가린이 1961년 4월 12일 우주비행을 하면서 미국에 앞섰습니다. 미국이 아폴로 계획을 들고 나와 달에 처음으로 사람을 착륙시키면서 미국이 일거에 전세를 역전하기까지 소련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미국에 이념적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여겼죠.
남북의 우주 경쟁 역시 큰 틀에서는 이와 비슷합니다. 미국의 발사체에 실려 우주로 떠나는 425 위성과 러시아의 기술력을 받아들이는 북한의 인공위성은 남북의 과학기술 경쟁뿐만이 아니라 체제·이념의 경쟁과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미소의 스페이스 레이스는 서로를 의식했지만 직접적으로 겨누지 않았습니다. 되레 전 인류가 누릴 수 있는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했죠. 1970년대 아폴로-소유즈 합동 프로젝트가 좋은 예입니다. 남북도 선의의 우주 경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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