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위기에 `사법리스크`… 총수들 겹시름
사업 계획 구상 중 개인소송까지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위기와 글로벌 경기 침체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LG·SK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최근 들어 잇따라 총수의 '사법 리스크'까지 커지면서 고전하고 있다. 내년에도 여전히 경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돌파구 마련에 전념해야 할 재계 총수들은 개인 소송까지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경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기소 이후 3년 2개월가량 진행된 재판이 이번 검찰의 구형으로 마무리되며 내년 1월 26일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이후 양측의 항소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한동안 사법 리스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부터 시작해 햇수로 8년째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며 겨우 본격적으로 경영 활동에 복귀하 이 회장이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또다시 제약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이와 관련 이 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제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또 그는 "대한민국 1등 기업, 글로벌 기업에 걸맞게 더 높고 엄격한 기준에 임했어야 하는데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저와 삼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은 훨씬 높고 엄격한데 미처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했다.
LG그룹은 때늦은 상속 소송 재판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18년 타계한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고 구 선대회장의 아내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가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당초 세 모녀는 구 회장이 ㈜LG주식을 모두 상속받는다는 내용이 담긴 유언장이 있는 것으로 속은 것을 뒤늦게 알았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으나, 최근 진행된 재판에서 기존 발언과 반대되는 내용이 밝혀지며 새로운 양상으로 가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서부지법 제11민사부(박태일 부장판사)가 진행한 LG가 상속회복청구 소송의 2차 변론기일에서는 지난해 세 모녀가 소송 제기에 앞서 상속 분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던 시점에 녹취된 대화가 공개됐다. 해당 녹취록에서는 김 여사가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받고 싶다"고 언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소송 당시 세 모녀가 해당 소송이 경영권 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밝힌 것과 달리, 이번 소송을 제기한 의도가 사실상 경영 참여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만약 세 모녀 측 주장대로 상속 재산을 법정 비율로 다시 분할한다고 가정하면, 올해 9월 기준 15.95%인 구 회장의 ㈜LG 지분율은 9.7%로 줄어들면서 세 모녀의 지분율 합(14.09%)보다 낮아지게 된다. LG는 재산 분할을 빌미로 경영권을 흔들려는 시도로 보고 단호한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에 '대화자'로 등장한 구 대표의 남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의 소송 개입 여부도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1988년 결혼한 두 사람은 2015년 최 회장의 혼외자식 인정과 2017년 이혼 조정 신청, 2019년 노 관장의 반소 제기 등으로 길고 복잡한 이혼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1심에서는 노 관장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로 1억원, 재산 분할로 현금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의 이혼 청구는 기각됐다.
양측 모두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며, 지난 9일 항소심에 대한 첫 변론준비기일이 진행됐다. 노 관장은 가사 소송에서 이례적으로 직접 출석한 데 이어 언론에 "남의 가정을 깬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최 회장 측 역시 입장문을 내고 "노 관장과의 혼인 관계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완전히 파탄이 나 있었고, 십수 년 동안 형식적으로만 부부였을 뿐 서로 불신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남남으로 지내왔다"며 "재판을 위해 언론에 일방적인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이 내년 사업 계획을 치열하게 구상해야 하는 와중에 '사법 리스크'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전혜인기자 hy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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