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m절벽 쿵, 25t트럭 꽝, 5m물속 푹…“여보, 사람살린 車 삽시다” [세상만車]
볼보·쉐보레·현대차 ‘안전대박’
스마트폰과 달리 안전이 먼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0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분쟁과 관련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7일 하마스의 기습 침입으로 촉발된 무력 분쟁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군인을 포함해 14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질 240여명이 하마스에 인질로 붙잡혀 있죠.
이스라엘이 보복 공습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1만명이 넘게 사망했습니다. 사망자 10명 중 4명이 어린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쟁의 광기는 군인(혹은 테러범)은 물론 전쟁과 상관없는 민간인의 생명을 더 많이 앗아가고 단란했던 가족의 행복도 말살합니다.
그런데 이거 아시나요. 전쟁보다 더 비참한 사건이 우리 곁에서 항상 일어납니다. 자동차 사고죠. 전쟁 사망자보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전쟁 사망자와 관련한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가 2000년에 발표한 보고서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WHO가 세계 각지에서 2000년에 발생한 사고사를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자동차 사고 사망자는 126만명, 전쟁·분쟁 사망자는 31만명으로 조사됐습니다. 자동차 사고 희생자가 전쟁 희생자보다 4배 많은 셈입니다.
20년간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 희생자가 17만명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자동차 사고가 전쟁보다 더 무섭습니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피라미드 형태로 구성됐습니다.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그 다음 단계의 욕구를 추구하게 됩니다.
1단계는 생리적 욕구입니다. 식욕, 배설욕, 수면욕, 성욕 등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본능적인 신체적 기능에 대한 욕구입니다.
2단계가 바로 안전 욕구입니다. 생리적 욕구가 일정부분 충족됐을 때 우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사고나 병으로부터 안전, 개인적인 안정, 재정적인 안정, 건강과 안녕 등을 의미합니다.
전쟁, 재해, 폭력, 실업, 사고, 병 등으로 안전이 위협받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거나 보험에 가입해 안전 욕구를 실현하기도 한다고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싶어하는 ‘존엄 욕구’를 충족시키기 원합니다. 마지막이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가장 중요한 1~2단계 생리적·안전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상황’에 처합니다. 3~5단계 욕구를 일부 충족시켰더라도 불안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동의 자유, 귀족들이나 부자들의 존엄·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주력했던 자동차가 뒤늦게나마 안전에 눈 뜬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이동의 자유와 편리함, 달리는 재미는 그 다음입니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자율주행차도 따져보면 운전자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사고를 줄여주는 ‘안전’ 때문에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단순히 산업의 산물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연환경·역사·문화·경제·정치의 산물입니다. 이 중 자연환경과 문화가 자동차 산업 태동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줍니다.
스웨덴 출신 볼보는 지금은 아름다운 청정 대자연으로 유명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 척박했던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자연환경의 산물이죠. ‘환경결정론’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자동차 브랜드입니다.
볼보는 독일, 프랑스, 영국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당시 기준으로 주행 성능이 우수한 자동차를 생산하던 1927년 뒤늦게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습니다.
볼보는 도시화가 이뤄진 다른 유럽 국가에서 만든 자동차는 겨울이 길고 추우며 지형도 험한 스웨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죠. 척박한 자연환경에서는 사소한 고장이나 사고도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 결과, 도로에서 잘 달리는 차보다는 투박하고 단순하면서도 안전한 차를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디자인도 ‘멋짐’보다는 ‘실용’에 초점을 맞췄죠.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난 실용성·편의성을 추구하는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을 디자인에 적용한 셈입니다.
여기에 모든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북유럽 복지 정책도 자동차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줬습니다. 안전은 행복이니까요.
1959년 첫선을 보인 뒤 매년 100만명이 넘는 탑승자들의 목숨을 구한다는 찬사를 받는 3점식 안전벨트(차체 세 곳에 고정돼 탑승자의 허리와 어깨에 걸치는 형태)도 볼보 작품입니다.
볼보는 특허출원한 3점식 벨트를 독점하지 않고 다른 브랜드들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했죠.
시티 세이프티(긴급 제동 시스템), 부스터 쿠션(자녀 키 높이에 따라 시트를 조절하는 장치) 등도 볼보가 세계 최초로 차에 채택한 안전 시스템입니다.
지난 2021년 10월 인기 유튜버 A씨는 25t 트럭에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를 당했으나 볼보 XC90 덕분에 화를 면했습니다. 볼보 XC90은 사고 충격으로 뒤쪽이 심하게 찌그러졌지만 탑승자들은 무사했죠.
지난 2020년 7월에도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B씨 가족의 목숨을 지켜줬습니다. 역시 XC90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역주행 트럭과 정면충돌했고, 트럭 운전자는 중상을 입었지만 B씨 가족은 가벼운 부상만 당했습니다.
벤츠와 BMW가 주도하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1년 기다려도 볼보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데 가장 기여한 것도 바로 ‘안전’입니다. 가족 생명을 지켜주는 데 그깟 1년 기다림이 대수이겠습니다.
참고로 볼보 출신인 전기차 브랜드인 폴스타도 현재까지 15만대 이상 판매됐지만 단 한건의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전기차 분야에서도 ‘안전대박’을 이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안전은 스웨덴의 척박한 환경, 역사, 복지가 함께 선물해준 볼보와 폴스타의 ‘운명’입니다.
‘미국인의 신발’이라는 포드의 포디즘(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을 통해 자동차 대중화를 가장 먼저 누린 미국인에게 자동차는 금속으로 만든 ‘옷’입니다.
옷은 신체를 보호하고 치부를 가려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표현하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대체물이죠.
자동차도 옷처럼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미지와 욕망을 표출하는 존재입니다.
자동차는 한 세기 넘게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여성보다는 남성들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마초’(macho)입니다.
에스파냐어로 ‘남성’을 뜻하는 마초는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며, 정력이 센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미국 자동차 브랜드는 마초 스타일을 중시합니다. 강하고 큰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단단한 근육질의 스포츠카와 함께 크고 투박한 몬스터 트럭 등 대물(大物)을 드림카로 여기죠.
개인적으로 19세기 금을 찾아 광활한 서부를 개척했던 미국인들의 프런티어(frontier) 정신, 카우보이에서 엿볼 수 있듯이 거친 황무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요구됐던 강한 남성상과 큰 덩치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대물 숭상’에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여기에 청교도가 가져온 가족 중심의 문화가 맞물린 뒤 넓은 땅, 싼 기름 값, 안전을 위한 욕구가 결합되고, TV와 할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 대중으로 확산돼 ‘마초 자동차 문화’가 탄생하지 않았을까요.
미국 브랜드인 쉐보레는 픽업트럭과 대형 SUV 등을 통해 국내에서 대물 문화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대물에 어울리는 안전성으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콜로라도가 저수지에 추락해 1시간 동안 침수됐지만 뛰어난 차체 강성과 수밀성으로 형성된 에어포켓 덕분에 운전자가 안전하게 구조된 사연이 알려졌기 때문이죠.
박경란(56, 경북 경산시) 씨는 지난달 23일 오전 7시14분쯤 콜로라도를 운전하다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화곡저수지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소방당국은 “차가 저수지로 가라앉고 있다”는 행인의 신고를 받고 곧바로 출동했다. 차는 이미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소방당국은 잠수장비까지 동원, 수색에 나서 수심 5m 지점에 가라앉아있던 차에서 1시간여만에 박씨를 발견해 물 밖으로 인양했죠.
박씨는 가벼운 저체온증상을 제외하고는 다른 부상은 없는 상태로 구조됐습니다.
박씨는 “사고 당시 전면유리가 모두 금이 간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깨지지 않았고, 차문 사이에서도 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았다”며 “이번 사고로 콜로라도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생겼고, 다음날 바로 콜로라도를 다시 구매했다”고 밝혔습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생사를 오가는 위중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역경을 이겨낸 그를 쉐보레 콜로라도 명예 엠버서더로 최근 임명했습니다.
2000년 이전까지 현대차는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최대 격전장인 미국에서 잘 만들기 보다는 많이 파는 데 초점을 맞춰 ‘싼 맛에 타는 일본차 짝퉁’으로 취급받았습니다.
1999년 현대차 회장으로 취임한 정몽구 명예회장은 미국 출장길에서 품질 굴욕에 충격받았죠.
‘고장이 잦고 수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싸구려 차’로 여겨지는 현대차의 현실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NBC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자니 카슨 쇼’, CBS 인기 토크 프로그램 ‘데이비드 레터맨 쇼’ 등에서 미국 정부의 정책결정 오류를 현대차 구매 결정과 비교할 정도였습니다.
정 명예회장은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신차 출시 일정을 미루더라도 부실한 생산라인을 중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제이디파워(JD.Power)의 품질 컨설팅도 받게 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품질 상황실’도 24시간 가동했습니다. 신차 양산에 앞서 양산공장과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차를 생산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가혹하다고 알려진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 영하 40도의 스웨덴 얼음 호수, 미국 모하비 사막에서 ‘지옥 테스트’도 진행합니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뚝심있게 추진한 품질·안전 혁신은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즈는 지난 2021년 2월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골프대회 행사차량으로 제공된 GV80을 몰던 중 로스앤젤레스 인근 도로에서 전복사고로 중앙분리대와 나무를 잇달아 들이받았습니다. 생명을 앗아갈 큰 사고였지만 우즈는 다리 부상만 입었죠.
전기차인 기아 EV6는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NHL)에서 전설로 불리는 체코 출신 아이스하키 선수를 살렸습니다.
지난해 5월 야르오미르 야그르는 인스타그램에 트램과 추돌사고로 일그러진 EV6 사진을 게재하며 “기아가 나를 구했다”고 밝혔습니다.
트램 무게를 감안하면 저속으로 충돌했다 하더라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한쪽 손에 가벼운 부상만 입었습니다.
현대차 아반떼N도 지난해 12월 300피트(91m) 협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추락사고에서 탑승자들을 구했습니다. 아반떼N은 크게 파손됐지만 차에 타고 있던 커플은 크게 다치지는 않았죠.
사실 현대차그룹의 안전기술은 지난 10년간 품질 혁신 노력으로 볼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단,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품질을 끌어올린만큼 미흡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후발 주자로서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살기 위해 일단 싼 값에 팔아야 했던 ‘생산·판매 제일주의’의 그림자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생산·판매 제일주의에서 품질·안전 제일주의를 천명하면서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현대차그룹 역사와 문화에도 ‘안전 유전자(DNA)’가 있습니다.
‘흙수저’에서 현대그룹을 일군 것은 물론 한국 산업 근대화 주역이 된 아산(峨山)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봐 해봤어”라는 도전정신은 물론 사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 인본주의(人本主義)도 실천했습니다.
인본주의는 ‘안전’과 직결됩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한민족의 ‘홍익인간’ 정신도 계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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