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청소년이 수험생일까…수능은 다른세상 이야기인 아이들
학교밖센터 "근로청소년도 대학생처럼 '유예기간' 사회 적응 필요"
![현장에서 청소년 만난 김현숙 장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7일 서울 노원역 인근에서 진행된 '찾아가는 거리상담' 현장을 찾아 청소년들과 대화를 나누고있다. 이번 거리상담은 청소년들에게 복지서비스 정보를 제공하고 보호가 필요한 가정 밖 청소년들을 청소년쉼터와 같은 보호시설로 연계하는 등 청소년의 보호와 자립을 돕기위해 마련되었다. [여성가족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311/19/yonhap/20231119091106245vnsz.jpg)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주변에서 정말 평온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 한두 명을 빼고는 아무도 수능을 치르지 않았어요. '내일은 아빠가 찾아오지 않을까. 내일은 엄마가 나한테 욕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수능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친구들이 더 많아요."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전국이 '시험장 모드'였던 지난 16일, 서울 도봉구 서울시립 청소년자립지원관에 사는 안모(22)양은 수능에 응시하지 않았던 4년 전을 회상하며 "수능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말했다.
만 18세 때부터 가정밖청소년을 위한 쉼터를 거쳐 자립지원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안양은 수능 날 오전 5시께 일어나 오전 6시 30분에 인턴 직원으로 일하는 용산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로 출근했다.
오후에 일이 끝난 뒤에는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대학생들이 종강하고 놀러 다니는 게 가장 부럽다"고 말하며 웃으면서도 "다른 친구들은 자기가 준비하는 게 있어서 대학을 선택한 거고, 저와는 다른 길을 걷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금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중학교 때에는 경찰공무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게 됐다고 한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당해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으나 신고 접수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했고, 세심한 경찰이 돼 아이들의 방패막이 되고 싶었다는 것이다.
안양은 또 "대학 등록금을 내줄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학자금 대출도 결국 빚인데, 빚을 지면서 사회에 나오는 게 무섭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래 친구들은 수능을 봤다는 만 18세 서연우 군은 지난 16일 1교시 국어영역이 시작하기 10분 전인 오전 8시 30분께에야 집을 나섰다.
그는 평소처럼 오전 9시 30분부터는 광주 지역 초등학교의 목공 수업 보조강사로 일하며 학생들의 수업을 지도하고, 오후에는 목공소로 돌아와 다음 날 수업을 준비했다.
서군은 또래보다 1년 이른 올해 초 대안학교 생활 5년을 마친 뒤 목공소에서 일을 하며 작곡가의 길을 걷고 있다.
평생 꾸준히 사람들을 위로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서군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교에 가는 게 취업이 좀 더 잘 된다는 이유뿐인데 그 이유가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며 대학 진학의 길을 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수능시험이 끝난 뒤 SNS에 또래 친구들이 수험표 인증사진을 많이 올린 걸 보고 '벌써 성인이 됐구나. 시간이 참 빠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며 "각종 수험표 할인을 못 받는 건 좀 아쉽다"며 웃었다.
올해 수능 응시자 중 재학생은 32만6천646명으로, 재학생이 2005년생인 만 18세 인구(43만5천31명)라고 가정할 경우 전체 인구의 25%가량은 수능에 지원하지 않았다.
또 1교시 지원자 50만1천321명 가운데 44만8천228명이 응시해 결시율이 10.6%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원서를 내고도 수능을 치르지 않은 대입 연령대 청소년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청소년들에게도 일종의 '유예 기간'이 주어져 사회 안전망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청소년 관련 법령상 청소년 연령은 만 9세부터 24세까지로, 성인이 된 이후로도 6년간은 청소년 신분이다.
박윤범 광주광역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팀장은 "대학교 4년여 간의 기간은 미성년자에서 직장인으로 이행하기 전 일종의 '유예기간'으로 작용하는데, 대학 밖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기간이 없다 보니 불안감에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아르바이트 시장에 진입하는 순간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박 팀장은 "사회가 이런 친구들에게도 유예기간을 제공해 좀 더 경험을 쌓고 일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를 제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능에 응시하지 않은 청소년들은 수능을 봤건 안 봤건 모두가 응원받고 사회가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서연우 군은 "저희는 다른 길을 보고 달려가지만, 또래 친구들 모두 응원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안양은 "수능 날에는 학생들만 응원하는 분위기가 커서 거기에 휩쓸려 소외감을 느끼는 친구들도 많을 것 같다"며 "그러지 말고 각자 인생을 잘 살자"고 다짐이자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key@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시간들] 소년범이었던 '트랜스포머', 조진웅은 알고 있나 | 연합뉴스
- '위너' 출신 남태현, 첫 재판서 음주운전 혐의 인정 | 연합뉴스
- 여친 살해 후 김치냉장고에 시신 1년 유기 40대…무기징역 구형 | 연합뉴스
- 태국인 아내 얼굴에 끓는 물 부은 40대 한국인 남성 검거 | 연합뉴스
- [샷!] "알바생들 시급 올려줘야 하는 거 아님?" | 연합뉴스
- '박사방' 조주빈, 미성년자 성폭행 징역 5년 더해 총 47년 확정(종합) | 연합뉴스
- 국민 64% "비상계엄은 내란"…모든 연령대서 과반[NBS] | 연합뉴스
- 포브스 '여성파워 100인'에 케데헌…이부진·최수연 90·91위 | 연합뉴스
- 화재감지기 울렸는데 오인 신고로 보고 출동 지연…80대 숨져 | 연합뉴스
- 40만년전 인류 불 피운 흔적 찾았다…통설보다 35만년 앞서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