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라는 전에 없었던 정치엘리트 유형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11. 1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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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7일 대구 수성구 스마일센터 방문 중 시민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대구에 내려가 시민들에 에워싸인 장면을 보고 그의 정치진출 선언이 임박했음을 확신하게 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가 정치권에 뛰어든다면 여러 점에서 파장이 있겠지만 나는 한국 정치엘리트 상(像)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낀다.

한 장관은 강남 8학군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서 다닐 수 있는 가장 좋은 학부를 나왔다. 사법고시에 일찍 합격했고 ‘조선 제일 검’ 소리를 들을 만큼 검사로서 잘 나갔다. 얼굴도 그만하면 괜찮고 패션 감각은 아주 좋아 보인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유명한 장인을 두었는데 그 딸인 아내는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온갖 결여와 투쟁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참 재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 그가 속하게 될 보수 정당에는 그런 유형의 ‘재수’들이 꽤 있다. 한국에서 우파가 좌파보다 인기가 없는 것은 재수 없는 인간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동훈은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왕재수’가 될만하다.

한 장관 정도 배경을 가진 사람은 서울 강남이나 영남, 혹은 전국구 공천을 받아 수월하게 당선되고 있는 듯 없는 듯 의정 생활을 한다. 운 좋으면 재선·삼선 까지 할 수도 있지만 선수와 무관하게 존재감은 없다. 그들은 경력의 정점을 국회에서 완성하려는 엘리트 인생일 뿐 정치인으로서는 무해무익한 병풍에 불과하다. 서울 법대와 고위 공직자 출신중 국회에 오래 머물고도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정치인을 찾아보라. 꽤 많다.

한국에선 평탄한 인생스토리로는 ‘두목’이 될 수 없다. 홍준표나 이재명처럼 가난하게 나고 자라 운명과 다투며 살아온 편이 훨씬 유리하다. 대통령급에선 특히 그렇다. 이승만은 몰락한 양반이었고, 박정희는 입 하나가 느는 것이 두려웠던 모친이 낙태 시도를 한끝에 태어났고, 전두환·노태우는 평생 촌스러웠다. 김대중·노무현은 상고가 최종 학력, 이명박은 생긴 것조차 가난해 보였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같은 계급 출신인 ‘서민의 왕’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예외는 지금 윤석열 대통령일 것이다(박근혜는 ‘공주’이므로 일단 예외). 이 칼럼에서 언제 한번 쓴 것처럼 그는 중산층 아들의 전형 같은 캐릭터다. 서울 법대를 나왔고 여유 있게 자란 티를 곧잘 낸다. 가령 그 연배에서는 드문 초등학교 시절 보이스카우트 경험, 미식 취향 같은 것을 별 의식 없이 드러낸다. 역대 대통령 중 미식가는 그가 아마 처음일 것이다. 대부분 서민의 아들이었던 다른 대통령들은 먹는 걸 가리는 것을 터부시하는 윤리관에 지배됐고 실제 아무거나 잘 먹었다(김대중은 식탐이 있었지만 미식보다는 대식에 가까웠다). 윤 대통령은 그나마 ‘사시 9수’의 역정이 ‘재수 없음’을 희석해 주고 있다. 인상 자체가 일반적인 엘리트, 모범생과는 거리가 있다. 약간 악당 같고 ‘개구져’ 보인다. 그게 정치인 윤석열의 자산이 됐다고 생각한다.

한동훈은 이마에 ‘나 엘리트’라고 써 붙여놓은 얼굴이다. 서울법대를 나온 사람이 얼굴까지 서울법대스러우면 위화감을 주게 돼 있다. 그런 이미지의 정치엘리트로 박철언이나 박찬종이 생각난다. 둘 다 ‘재승박덕’ 소리를 들었다. 지나치게 똑똑한 이미지 한계에 갇혀 손해를 봤고 결국 대중 정치인으로는 실패했다. 한 장관의 배경이나 프로필, 얼굴만 보면 ‘관상목’ 노릇만 하다 정치판을 떠난 무수한 엘리트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 장관은 앞서 ‘관상목’들과 다른 점이 있다. 명분에 대한 치열함이다. 경력의 정점을 완성하려 정치판에 들어온 관상목들은 명분을 위해 싸우는 법이 없다. 보신과 영전에만 관심을 두고 이 줄, 저 줄 간 보고 목에 힘 빼는 데만 4년은 걸린다. 이 정권이 그 역할을 요구해서이기도 하겠지만 한 장관은 법무부장관으로 있으면서 이 정권의 이데올로그처럼 싸웠다. 정치인도 아니면서 국민의힘에 속한 그 어느 정치인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가령 그가 최근에 한 발언 중에 야당의 검사 탄핵을 비판하며 ‘민주당을 상대로 위헌 정당 심판소송을 내면 어떻겠느냐’고 지른 것을 보라. 국민의힘 대변인들은 이런 논평을 못 낸다. 한 장관 같은 치열함이 없기 때문이다.

한 장관이 국회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프랑스 혁명기에 당통이나 마라, 혹은 로베스피에르가 저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든다. 열정과 논리, 수사의 균형이 탁월하다. 한국 정치에서 처음 보는 유형의 웅변이다. 서구 정치는 그리스·로마 이래 웅변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전통이 이어져 왔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선 승부는 막후에서 결정된다. 말은 소용이 없고 따라서 볼만한 웅변이라는 것이 없다.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 연설의 차이는 미국 대통령 연설은 문학이고 한국 대통령 연설은 보도자료라는데 있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인의 말은 ‘책잡히지 않는 말’이 최선이었다. 혹은 쌍욕이거나. 한동훈은 정치에서 말이 얼마나 크고 매력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지 시연해 보이고 있다.

한국의 최고엘리트라고 하면 말은 아끼고 눈치는 빠른, 즉 생활 정치의 달인이 가장 보편적 유형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가 봐야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소두목도 되지 못한다. 한동훈은 그들에 비해서도 배경이 훨씬 엘리트적이지만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그가 정치에 뛰어들면 지금까지 없었던 정치엘리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한다. 성공한다는 보장이야 없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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