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다변화로 납품 독립"...커피믹스, 라면 1등도 '탈출구' 찾기

유엄식 기자, 김민우 기자 2023. 11. 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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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제조-유통 전쟁 1년, 화해에서 독립으로 ②
[편집자주] 즉석밥 1등인 CJ제일제당이 쿠팡에 햇반 납품을 중단한 지 1년이 지났다. 외형은 납품가격 갈등이지만 실상은 오랜 기간 지속된 제판(제조 vs 판매) 전쟁의 연장선이다. 케케묵은 주도권 싸움이기에 곧 합의점을 찾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장기화하면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화해 대신 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CJ vs 쿠팡 전쟁 1년, 무엇이 달라졌나.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기사가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배송 경쟁력을 앞세운 쿠팡은 올해 3분기에 역대 최초로 분기 매출 8조원을 넘었고, 연 매출 30조원 진입을 앞두고 있다. 쿠팡은 이제 제조업체들에겐 없어선 안될 매출처다. 대형 식품 기업조차 이미 전체 매출의 20%가 쿠팡 주문량에 좌우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쿠팡의 '대량 선매입' 구조는 그동안 주요 식품 기업들이 안정적인 매출을 거둔 원동력이었다. 오프라인 영업망 운영비와 관련 인건비를 줄여 제조사 이익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수년간 적자를 감내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뤄낸 쿠팡의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면서 제조사와의 납품가 협상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다. 매년 11월경 쿠팡과 신규 납품가 협상을 앞둔 업체들의 긴장감이 높아진 이유다.

이 같은 흐름은 탄탄한 고정 수요층을 확보한 1등 상품을 만드는 업체들도 움직이게 한다.
시장 점유율 1위 제조사들의 '쿠팡 전성시대' 생존 전략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커피믹스 시장 1위인 동서식품은 쿠팡에 공급하는 온라인 전용 상품을 별도 관리한다. 쿠팡에 과도하게 공급량이 집중되지 않도록 일종의 캡을 씌우는 방식이다. 회사 관계자는 "맥심 커피믹스는 온라인 채널에선 다른 유통 채널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적정 물량을 배정한다"고 말했다.

동서식품은 커피믹스(제조커피) 시장 점유율이 90%에 육박한다. 경쟁사와 초격차를 벌린 독점적 지위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쿠팡을 통한 온라인 판매 비중이 높아지자 쿠팡과 납품가 갈등을 빚었고 동서식품은 '카누' 브랜드 커피믹스를 지난해 초부터 수 개월간 쿠팡에 공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진통 끝에 납품을 재개했지만 이런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인스턴트 커피 매대에서 한 소비자가 제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최근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온라인 판매 비중은 15%를 넘어섰다. 동서식품이 쿠팡에 커피믹스를 공급한 게 2019년부터인데 불과 4년 만에 매출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된 셈이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쿠팡의 매출 의존도가 높아지자 납품가 협상력 관리를 위해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1위 업체 농심은 신라면을 비롯한 주요 제품 납품가를 온라인, 오프라인 경로 동일하게 책정한 '1물 1가' 원칙을 고수한다. 유통 채널 별로 공급량을 제한하지 않지만 출고가는 차이가 없다. 농심 관계자는 "신라면은 쿠팡, 이마트 등 유통 채널 형태와 관계없이 동일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농심의 이런 전략은 유통사와의 갈등을 겪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농심은 2010년 당시 오프라인 유통가를 장악한 이마트와 신라면 납품가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웠다. 당시 이마트가 전국 최저가로 신라면을 공급하겠다며 '오픈 프라이스(Open Price)' 정책을 추진했고, 이에 농심이 이마트에 신라면 납품을 중단하며 전국 이마트 매대에 신라면이 비어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최근 벌어진 햇반 전쟁과 비슷한 양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문제로 4년째 쿠팡과 갈등을 겪고 있는 LG생활건강도 콜라, 세제 등 주요 제품 공급을 중단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 문제가 해결되면 양측이 납품가 협상을 재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양측의 이견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납품 중단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손실 보며 납품할 수 없어...제조 vs 유통 공룡 갈등에 숨죽인 업계
시장 점유율 2, 3위 업체들은 이런 대응도 어렵다. 결국 1등 업체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납품가를 낮출 수는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또 다른 납품가 분쟁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CJ제일제당과 쿠팡과의 갈등이 격화된 이후 식품 업체들은 자사 온라인몰 육성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킬러 상품을 자사몰에서만 판매하거나, 연회비를 받고 상시 할인된 가격으로 주요 제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가입자 확보에 나선다. 올해 10월 기준 동원F&B는 약 150만명, hy(옛 한국야쿠르트)는 약 165만명의 자사 온라인몰 가입자를 확보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김민우 기자 minu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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