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롤러코스터의 경고…'불량전기' 시대 오나

차대운 2023. 11. 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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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압강하' 사고, 간선 변전소 개폐장치 고장 탓
0.05초 사고에 승강기 시민 갇히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긴장'
전문가 "한전 재무 악화, 빈발한 송배전 사고 초래 우려"
멈춰선 '티 익스프레스' [A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지난 14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의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같은 시각 용인, 수원, 평택, 오산, 하남, 화성, 성남, 광주 등 경기도 여러 도시에서 아파트, 상가의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멈춰 119 구조대가 출동해 안에 갇힌 시민들을 구조하는 일도 잇따랐다.

이 모든 일이 당시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한 변전소 설비 이상으로 눈 깜짝하는 순간보다 훨씬 짧은 단 0.05초 동안 전압이 급속히 낮아진 '전압 강하' 사고 때문에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전력망 운영을 책임지는 공기업 한국전력의 심각한 재정 위기로 이번과 같은 광범위한 지역의 '불량 전기' 사고가 잦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19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 14일 경기도 곳곳에서 발생한 사고의 1차 원인은 평택시 고덕 변전소의 개폐기 절연체 파손이었다.

서해안의 화력 발전소 등지에서 송전선을 타고 넘어오는 고압 전기를 받아 전압을 낮춰 수도권 남부 지역에 공급하는 고덕 변전소의 개폐기 절연체가 아직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망가져 버렸다.

이에 자동으로 고장 복구 전까지 0.05초 동안 고덕 변전소를 거쳐 수도권에 공급되는 전기 전압이 급속히 낮아졌다.

일반 가정이나 상점 등에서는 별다른 이상을 느낄 수 없었지만, 기기 보호나 안전 운영 차원에서 순간적인 전압 강하를 민감하게 인지하는 장치가 달린 놀이기구나 건물 엘리베이터 등 설비가 동시다발적으로 정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정전 사고가 났다고 알려졌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전압 강하로, 전기가 아주 끊어지는 정전과는 다른 개념이다.

전력망은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하는 단선이 아니라 그물망 형태로 이뤄져 있다.

수도관에 구멍이 나면 일대 파이프의 수압이 낮아지는 것처럼 자연재해와 변전소 설비 이상 등으로 특정 지역 전력 공급이 끊어지면 일대에 국지적으로 전압이 낮아지는 전압 강하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수도권 전력 공급의 관문이 되는 간선 격인 345kV 변전소의 설비 이상으로 수도권 거의 절반에 가까운 광범위한 지역에서 '불량 전기'가 공급돼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는 사고가 동시다발로 벌어진 일은 이례적이다.

아주 짧은 전압 강하라도 놀이기구나 엘리베이터를 멈춰 선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사고 때 평택과 이천 등지에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은 자체적으로 일정한 전압을 유지하는 장비를 갖추고 있어 생산 차질을 면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압 강하 사고를 인지하고 곧바로 한전 측에 사고 원인을 묻는 등 비상 대응에 나섰다고 한다.

초정밀 반도체 공장은 순간적인 정전이나 전압 불안에도 제품 불량으로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 공장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압과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치뿐 아니라 정전에 대비한 자체 발전 장비를 갖추고 있다.

한전 측은 아직 전기를 끊거나 넣어주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개폐기 고장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전 관계자는 "이번에 일어난 일은 정전과는 다른 것으로, 전압 강하에 해당한다"면서도 "전압 강하의 1차 원인이 된 개폐기 고장을 일으킨 원인을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전이 심각한 재정 위기를 맞아 지속해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송배전망 관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이번과 같은 '불량 전기' 사고가 잦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한전은 심각한 재무 위기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송배전망 투자를 늦추고 있다.

한전은 지난 5월 25조원대 자구안을 발표하면서 일부 전력 시설의 건설 시기를 미뤄 2026년까지 1조3천억원 절감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계획을 두고 '자구'가 아니라 '자해'라는 비판도 나왔다.

앞서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 따르면 2036년까지 전국의 송전선로는 현재의 1.6배로 늘어야 한다. 이에 따른 투자 비용은 56조5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한전은 전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난 정부부터 송배전망 보강 투자를 적게 했고, 요즘 들어 한전의 적자로 송배전망 투자에 재원 배분이 잘 되기 어려운 여건"이라며 "이번 사고는 향후 전기 품질 문제가 더 일어날 수 있다는 예고일 수 있다"고 밝혔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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