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해 때린 줄 알았다"…열여섯 살이 되기 전까지[학대 그 후]上

유민주 기자 입력 2023. 11. 19. 06:30 수정 2023. 11. 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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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학대' 고발한 열아홉 살 새인씨…'용기' 내기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생각보다 많다는 것 알았으면"

[편집자주] 많은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정인이 사건'이 발생하고 3년이 흘렀다. 아동학대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지만, 지난해까지 아동학대 발견율은 여전히 4년전 수준인 3.85퍼밀(천명당 한명 단위)에 머물러 있다. 아동의 보호자가 가해자인 경우 자발적 신고는 쉽지 않다. 무엇이 더 바뀌어야 할까. '학대 그 후의 이야기'를 더 알리고 싶은 열아홉 소녀를 만났다.

ⓒ News1 DB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사물놀이용 북채, 구두, 컴퍼스, 스카프, 라이터...

어린 시절 새인씨(가명·여·19)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 화를 낸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경찰에 진술서를 작성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엄마가 자신에게 사용한 도구들은 참 다양했다. 잘못한 게 없었지만 매번 잘못을 묻는 엄마에게 새인씨와 남동생은 중학교 3학년까지 학대를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인씨는 집을 떠나기 전까지 늘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어 노력하던 아이였다.

새인씨는 16살이 되던 해 부모님과 분리됐다. 더이상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다.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도 바뀌지 않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내 위클래스(위기학생 통합지원 서비스망) 상담실을 찾아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두려움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쉽지 않았지만 폭력의 실체를 차분히 토해낸 결과 아동센터로 떠날 수 있었다.

◇떠나는 게 두려운 아이들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이틀 앞두고 지난 17일 오후 강원도 원주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새인씨를 만났다. 지난해 무사히 수능을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올해 2월 자서전 '숨지 않아야 트이는 길'을 출간했다.

이날 올해 내리는 첫눈을 바라보며 두 볼이 붉어진 그는 자신이 도움받은 것처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을 글로 정리해 세상에 알린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대학생 새내기가 된 새인씨는 가정 학대 이야기에 분노한 뒤에, 그 이후를 살아가는 현실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세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매정함'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원동력은 '세상의 따뜻함' 덕분이라는 새인씨는 이미 세상 밖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를 마친 듯했다.

17일 오후 만난 새인씨(가명·여)가 옷에 떨어진 첫눈을 가리키고 있다. 2023.11.17/뉴스1 ⓒ News1

"나는 눈만 봐도 너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

새인씨가 어머니에게 늘 듣던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당시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상담 내용을 전해 들은 엄마는 분노하며 입단속을 시켰다. 그 후부터 집 밖에서는 화목한 가정인 척 가면을 썼다.

새인씨의 부모님은 삼남매를 모두 입양했다. 어떤 잘못을 지적할 때마다 행동을 똑바로 안 하면 파양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주로 북채를 휘둘러 피부는 얼룩덜룩해지기 일쑤였다. 처음엔 시퍼런 멍이 점점 보라색이 되다가 나중에 초록색, 노란색이 되며 사라지길 반복했다. 새인씨에게 방학은 지옥 그 자체였다.

"우리 집이 보통 가정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건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또래 친구들과 얘기해 보니 맞는 게 당연하지 않더라구요. 그냥 내가 바라는 것은 평범한 가정에서 지내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동생이 맞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다 마침내 결심이 선 새인씨는 위클래스에 다시 폭행을 고발했고 도움을 청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나온 두 명의 담당자가 집으로 찾아와 새인씨와 동생의 사정을 들었다. 어머니에게 맞는 동안 아버지는 방관했고, 부모님이 안 계시면 오빠에게 맞는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경찰서에 진술서 작성으로 방문한 남동생과 새인씨는 서로 다른 방에서 그동안의 일을 털어놨다.

아동보호기관 선생님과는 이후 신체검사로 시작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다. 진단명은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였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껴왔지만 막상 두 귀로 듣고 나니 억울한 마음이 치솟았다. 이 와중에도 공부를 놓지 않았던 덕분에 원하던 기숙사형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쉴 새 없이 느껴지는 공허함과 불안감으로 학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숨지 않아야 트이는 길

하지만 새인씨는 어렵게 얻은 새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 상담을 하던 선생님의 소개를 통해 우연히 독립출판사 '이분의일'을 알게 되었고 수많은 도움 속에서 그렇게 답답했던 마음을 글로 풀어낼 기회가 생겼다.

책 '숨지 않아야 트이는 길' ⓒ News1

새인씨처럼 아동 스스로 부모를 신고하는 행동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새인씨도 부모님 없이 혼자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리 사랑받기 위해 가사 일을 돕고 공부를 열심히 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새인씨는 "어디에 신고하든 진짜 너네가 부모 없이 고아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냐"는 말을 늘 어머니에게서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시설에서 지내는 시간이 좀 지나면 안정감을 찾고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새인씨는 그들의 결정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살아갈 막막함에서 시작되는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가정이 힘들고 부모에게 상처를 입은 친구들의 마음 상태가 조언을 귀담아들을 만큼 여유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출도 해봤지만 돈이 없어서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울 것이 뻔해요. 그게 그 친구들에게 안 좋은 경험이 될 것을 알기에 물어보면 가출은 피하라고 권해요. 집에 남아 있다는 결정을 들으면 달갑지 않지만 수없이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기에 존중하죠. 친구가 죽도록 맞는게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가정사에 개입은 어려우니까요."

새인씨는 가정학대 아동들이 할 수 있는 선택 중 그나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신고'라고 말했다. 신고한다고 바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려져야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힘든 장소에 머물면 성장도 멈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실 부모님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고 도움받을 수 있는 시설이나 사람들이 주변에 항상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고 봐요. 신고를 통해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하는 선택과 아예 모르고 (집에 머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천지 차이잖아요."

새인씨는 아동학대 발생을 사전에 완전히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예방만큼 피해자들을 발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단 찾아내야 실질적인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대의 종류도 물리적, 정서적 학대 등으로 나뉘는데 이것을 학대 당사자인 어린 아이가 인지하기 어렵고 증명해내기는 더욱 힘들다는 것도 신고를 망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올해 수능을 보는 동생을 제외한 가족과 인연을 끊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 호적상 파양된 상태가 아니기에 부모가 언제든 자신의 거주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직접 파양 소송을 하라는 아버지의 압박에 새인씨는 절차를 알아봤지만 소송 비용 때문에 잠시 중단한 상태다.

43일 뒤 스무 살이 되는 새인씨에게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까. 어떤 길이든 그는 당당하게 걸을 것 같았다. '숨지 않아야 트이는 길'임을 알고 있으므로.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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