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얻은 기술로 만든 헬기, 세계 시장서 유럽과 경쟁한다 [박수찬의 軍]
헬기 분야는 세계 각국에서 수출 성과를 거둔 K방산에 있어 ‘넘지 못한 산’으로 불린다.
T-50 훈련기, K-2 전차, K-9 자주포, 잠수함 등이 잇따라 해외 수주에 성과를 냈지만, 국산 헬기는 여전히 국내용으로만 남아있다.
‘2023년까지 300대 수출’을 언급했던 10여년 전의 목표 설정이 무색한 상황이다. 그만큼 글로벌 헬기 시장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의미다.
하지만 글로벌 업체와 차별화된 요소를 개발해 잠재 고객에게 제시하는 등의 노력이 더해져야 수출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세계 시장 장벽 직면한 국산 헬기
산악지형이 많은 한반도는 예전부터 헬기 운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베트남전쟁에서 UH-1의 위력을 목격한 직후부터는 헬기를 군사작전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열악한 국내 기술 여건으로는 헬기 개발이 어려워 미국산 500MD, UH-60 헬기를 국내 생산해 수요를 채웠다.
이같은 상황은 2013년 전력화된 수리온 헬기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수리온 개발 당시 해외협력업체였던 유로콥터(現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AS532 쿠거(Cougar) 헬기를 원형으로 해서 개발 기간을 줄였다. 이같은 방식은 소형무장헬기(LAH)개발에도 적용됐다.
수리온은 올해로 군 전력화 10주년을 맞이했다. 250여 대가 생산되어 육군과 해병대 외에도 경찰, 해경, 소방, 산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운용중이다.
글로벌 헬기 시장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일부 선진국이 선점하고 있다. 매우 보수적이며 폐쇄적인 특징을 지닌 시장이다.
헬기를 교체할 때, 이전 기종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작된 헬기를 도입하면 기존의 군수지원 및 정비체계와 훈련 체계를 바꾸고 인력 재교육도 해야 한다. 막대한 비용 지출이 따른다. 사전에 예상치 못한 기술적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헬기를 교체할 때마다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됨을 의미한다. 기존에 쓰던 기종을 생산한 국가에서 만든 신형 기체를 도입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구매해도 기존 체계와 상호운용성이 높은 기종으로 기울게 된다.
필리핀이 UH-60을 구매하기 전에 도입을 고려했던 Bell 412 헬기는 기존에 필리핀군이 쓰던 UH-1의 파생형이라 부품 공유 및 인력 전환이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
기존 시장 지배자들이 신형 기종을 출시하는 것도 글로벌 헬기 시장에 신규 진입자가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에어버스 헬리콥터는 지난 2009년 민수용으로 만든 H175 헬기를 군용으로 바꾼 H175M을 선보이고 있다. 최대속도와 항속거리, 탑승인원 등에서 수리온을 능가하는 성능을 지녔다.
국산 헬기 수출을 위해서는 글로벌 업체가 구축한 진입장벽을 뛰어넘는, 차별화된 요소를 개발해 해외 업체보다 경쟁 우위에 설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킬러 컨텐츠’ 있어야 경쟁력↑
KAI와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 다양한 옵션을 확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체 창정비를 하려면 대부분의 구성품을 빼서 손상 여부를 정밀하게 검사하고 수리 또는 교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술교범만 보면 누구나 창정비를 할 수 있도록 개발된다.
이는 해외의 잠재 고객들에게 수리온을 수십년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현지 군대나 업체에서도 창정비가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효과가 있다.
유럽이나 중동, 아프리카처럼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제작사로 기체를 보내 창정비를 요청하기가 쉽지 않은 국가에게 긍정적인 요소다.
창정비 기술을 절충교역에 포함해서 구매국이 헬기 관련 기술을 축적하는 것을 반대급부로 제공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그만큼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성능개량도 필수다. KAI는 자체 투자를 통해 국내외 잠재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수출형 KUH-1E 헬기를 만들었다.
초도양산 단계인 LAH도 자동비행조종장치를 비롯한 국외도입품목에 대해 국산화를 추진, 최대이륙중량을 확장할 예정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유무인 복합체계(MUM-T)도 추진되고 있다. 무인기를 사용한 군사작전이 중시되는 최근 추세를 감안하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도 헬기에 유무인 복합체계를 적용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2028년까지 관련 기술을 단계적으로 확보하고, 유무인 복합체계에 적용할 무인기도 제작될 예정이다.
LAH에 쓰일 유무인 복합체계는 지휘기 1대가 발사대에 있는 무인기 4대를 활용한다.
발사관에 실린 무인기는 발사 직후 감시정찰을 하면서 정보를 보내거나 정밀타격, 전자전 등의 임무를 수행해 헬기 조종사가 직면할 위험을 낮추고 공격력을 강화하게 된다.
세계 중형헬기 시장을 장악했던 UH-60 계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유럽과 중국도 V-280처럼 빠르게 기동력이 우수한 차세대 기동헬기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은 2020년 제132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UH-60의 수명이 다하면 차세대 고속중형기동헬기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의결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자동비행조정시스템 설계를 비롯한 차세대 헬기에 쓰일 핵심기술을 순차적으로 확보, 헬기 개발 기반을 다진다는 방침이다.
수리온과 LAH 개발 당시 핵심구성품과 체계개발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핵심구성품은 해외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 방산업계에선 정책 결정을 신속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처럼 소요 결정에서 개발 완료 시점까지 20여년이 걸린다면, 선진국에 차세대 헬기 시장을 빼앗길 위험이 크다.
수리온과 LAH는 헬기 시장에서 후발주자였지만, 선진국들도 초기 단계인 차세대 중형기동헬기는 우리가 발빠르게 대응한다면 유럽 등과 비슷한 출발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다.
K방산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려면 헬기의 수출과 기술개발이 필수다. 국산화율을 높이고 해외 시장 진출을 서두르면서 군에 우수한 성능을 지닌 헬기를 납품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와 군이 거시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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